[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무역 마찰에 통화 급락을 견딘 신흥국이 이번에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복병을 만났다.
가뜩이나 통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진 상황에 달러화로 거래되는 유가의 강세는 원유 수입국에 해당하는 신흥국의 숨통을 더욱 크게 조이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원유 저장 시설[사진=로이터 뉴스핌] |
28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국제 벤치마크 브렌트유가 연초 이후 22% 급등하며 4년래 최고치로 뛰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4년래 최고치에 거래되고 있다.
리라화가 올들어 반토막에 이르는 폭락을 연출한 데 따라 터키의 원유 매입 비용은 두 배 급증했다. 상황은 다른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인도 루피화로 같은 양의 원유를 매입할 때 비용이 39% 뛰었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기준으로 한 비용 역시 34% 치솟았다.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세계 3위 원유 수입국인 인도는 단기적으로 원유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고, 브라질과 말레이시아는 보조금을 도입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중앙은행이 27일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은 유가와 달러화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월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유가 강세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8월 무역수지 적자는 10억달러를 웃돌았다.
남아공에서는 연료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뛴 상황. 중앙은행은 랜드화 가치 하락과 유가 급등으로 인한 충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TS 롬바드의 존 해리슨 신흥국 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신흥국은 이미 상당수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며 “여기에 고유가가 가세하면서 경제 펀더멘털을 흔드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터키와 인도, 필리핀, 남아공 등 주요 신흥국들은 원유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이미 눈덩이로 불어난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다시 해당 통화 가치를 끌어내려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늘리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상황은 단시일 안에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가 11월 본격화되면서 원유 공급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월가의 일부 투자은행(IB)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석유수출기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포함한 비회원 산유국들이 증산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도 유가 추가 상승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신흥국의 통화 가치 급락과 고유가가 맞물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국제 유가가 10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른바 테이퍼(자산 매입 축소) 계획을 밝힌 데 따라 신흥국 통화가 급락, 해당 국가 경제를 피폐하게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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