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샴페인, 서양에선 성공한 삶 상징해
샴페인·굴 무제한 파티에 초대받아
처음 환상 궁합 즐거웠으나 결국엔 남겨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화이트 와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와인은 샴페인이다. 와인의 ‘와’자도 모르는 초보자들도 샴페인을 안다. ‘샴페인을 떠트렸다’는 말이 있을 만큼 샴페인은 성공한 삶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샴페인이 성공한 삶을 상징하는 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중세부터 프랑스 혁명 전까지의 프랑스 왕정 시절에 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때 샴페인은 왕실의 행사에 쓰이던 술이었다. 샴페인은 자연스럽게 왕족과 귀족들의 술로 중세이후부터 포지셔닝돼 왔다. 프랑스 왕뿐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 왕이나 황제들도 샴페인을 즐겼다. 19세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프랑스의 한 와이너리 샴페인을 황실 샴페인을 지정해 공급받았다. 그 와이너리 샴페인의 3분의 1은 러시아로 수출됐다.
샴페인이 귀한 대접을 받은 까닭은 그저 왕실에서만 즐겼기 때문이 아니다. 샴페인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공정을 인간의 손으로 한다. 포도를 손으로 따고 병입을 손으로 하고 병을 손으로 돌려서 최소 2년을 숙성시킨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밭을 기계가 아니라 말을 이용해 간다. 포도도 최상급의 수확물만 쓴다. 나머지는 버린다. 돔 페리뇽같은 샴페인은 작황이 좋을 해에만 샴페인을 만든다. 이러니 비쌀 수밖에.
이런 샴페인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샴페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이 술과 가장 즐기는 안주가 굴이다. 갯벌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굴이 비교적 저렴한 해산물이지만 굴이 풍족하다는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에서 굴 한개에 3달러(4300원)나 3유로(4500원)를 한다. 이 정도는 약과다. 바닷물의 수온이 따뜻한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에서 굴은 시가다. 굴 10개를 주고 수십 만원을 부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로마부터 굴이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황제들은 하루에 3~4번 연회를 열고 알프스의 눈에 담긴 굴요리를 신하와 귀족들에게 내놓기도 했다. 고대 로마가 힘들여서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를 정복한 것은 굴 파티를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샴페인과 굴은 서양에서는 성공한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여기에 캐비어까지 얹어 먹는다. 한마디로 과시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굴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는 국가의 하나다. 하지만 샴페인이 문제다. 샴페인은 우리나라에서 꽤 비싸다. 그러니 굴과 샴페인을 먹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나의 와인관련 버킷피스트의 하나가 “삼페인 이제 지겹다”라는 말을 해보는 것이었다.
통영 굴과 프랑스 샴페인 조화 완벽
그런데 나에게도 행운이 도래했다. 한 지인 셰프가 지난 11월 말인 자신의 생일을 맞아 생일파티 겸 송년회로 무제한 굴과 샴페인을 제공하겠다며 나를 초대한 것이다. 비록 경기 부천이어서 거리가 있고 셰프의 친구들과 초면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천사의 속삭임과 같은 일이었다(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에 있던 일이었다).
셰프가 준비한 굴은 경남 통영의 삼배체 굴이었다. 삼배체란 보통의 유전자인 2배체를 품종개량해서 3배체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알이 없다. 따라서 일반 굴과 달리 여름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또 3배체인만큼 굴이 일반 굴에 견줘 2배쯤은 크다. 굴 위에 뿌려먹을 수 있게 청어알 캐비어를 준비했다. 굴만으로도 맛있는데 청어알 캐비어라니.
함께 마신 샴페인은 로버트 드 팜피냑(Robert de pampignac) 브뤼였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셰프들에게는 친숙한 와인이다. 전 세계 레스토랑에 무려 1000만병을 공급하는 샴페인으로 매년 전 세계 매출 10위안에 든다. 1869년 프랑스 샹파뉴 지역 랭스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의 와인창고는 2015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유서 깊다. 현재 이 창고는 샴페인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 샴페인은 피노누아가 45% 피노뮈니에 35% 샤도네이 20% 정도로 블렌딩 돼 있다. 피노누아가 주된만큼 보디감이 짱짱하다. 숙성이 잘 돼 입자가 작은 거품이 계속 올라온다. 여기에 신선한 레몬향에 아몬드나 구운빵 등의 샴페인 특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산도도 쨍쨍해서 굴의 바다향을 입안에서 기분좋게 정리해준다.
20여병의 샴페인을 다 마실 것처럼 우리는 달려들었지만 샴페인의 강한 산도에 우리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굴이 너무 많다보니 굴 위에 레몬즙이나 타바스코 소스뿐 아니라 생햄이나 모르타델라같은 조리햄을 올려서 먹었더니 조화로웠다. 레시피를 하나 얻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파티 참석자들은 너무 산도와 거품이 강한 샴페인을 먹다보니 따뜻한 국물이 있는 수프나 파스타와 레드 와인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이날 생일인 셰프를 불앞에 세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멋지고 좋은 것도 지나치면 안되는 걸까? 우리는 결국 샴페인을 놔두고 레드 와인을 마셨다. 평소 레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날은 레드가 아주아주 부드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이 너무 따가웠다. 굴외에도 셰프가 준비한 빵과 대추야자를 먹었지만 나의 빈약한 소화기관이 너무 많이 마신 샴페인의 산도를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평소 “삼페인 지겨워”라는 말을 외쳐보고 싶었던 나는 ‘샴페인도 지겨울 수가 있네’라는 말을 되뇌이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날은 ‘샴페인 지겨워’라는 생각을 했던 내 와인 라이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하루일 것은 틀림없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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