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암호화폐 공시제’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공시에 강제성이 없어 프로젝트 팀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만 의존해야 하고, 기업들의 공시 운영 지침이 미비해 한번 올라간 공시가 삭제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공시는 사업내용이나 재무상황, 영업실적 등 기업의 경영 내용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알려주는 제도다. 주식시장에서 공시를 도입한 목적은 가격과 거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사항에 관한 정보를 공평하게 알림으로써 ‘공정한’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특정인에게 선별적으로 중요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방지하고, 시장 참여자 간 정보 불균형을 완하하고자 한 것이다.
암호화폐에 공시제가 등장한 배경도 이 때문이다. 건전한 투자 환경, 정보 불균형 완화, 공정한 가격 형성에 그 목적이 있다.
국내에서 암호화폐 ‘공시’라는 이름을 내걸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거래소 ‘업비트’와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인 크로스앵글(Crossangle)의 ‘쟁글(Xangle)’ 두 곳이다.
업비트는 지난 4월 암호화폐 프로젝트 공시제 도입 소식을 알리고, 홈페이지 ‘고객센터’에 ‘프로젝트 공시’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크로스앵글은 올해 3월부터 쟁글 베타 버전을 출시했으며, 내달 공식 버전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쟁글은 빗썸과 코빗, 코인원, 고팍스, 한빗코, 지닥 등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와 파트너십을 맺은 상태다.
◆ 공시 참여 프로젝트 늘었지만.. 올렸다 삭제하는 사례 빈발
꾸준히 공시에 참여하는 프로젝트 수는 늘고 있다. 8월 22일 기준 업비트 공시 게시판에는 총 24개 프로젝트가 자발적으로 공시에 참여하고 있으며, 쟁글에는 총 169개 프로젝트 내용이 올라와 있다.
물론 공시에 ‘강제력’은 없다. 이와 달리 주식시장에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시 규정에서 열거하고 있는 사실이 발생할 시 그 사실을 당일 한국거래소에 신고해야 한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국내 및 글로벌 기준으로 합의한 규제 및 법이 부재하다. 또 현재 공시를 운영하는 주체도 민간기업이다 보니 공시는 프로젝트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실제 업비트 공시 설명에 따르면 ‘본 공시는 암호화폐 프로젝트 측의 ‘게재 요청’에 따라 업비트가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대외 공지에 대한 링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이러한 점을 들어 악재보다 ‘호재’에 치우친 정보 위주로 공시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불신도 있다.
또 여러 해외 프로젝트들이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공시 서비스가 과연 ‘글로벌’ 프로젝트까지 폭넓게 참여를 독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 업비트에 공시 게시된 절반 가까이가 국내 프로젝트 관련 내용이다. 업비트 관계자는 “프로젝트가 공시를 꼭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없고,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로 부터 정보를 제공받아야 공시를 올릴 수 있다”며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프로젝트들에게는 앞서 공시 취지에 대한 상세 안내만 제공된 상태”라고 말했다.
서비스 초반에 올라간 공시가 삭제된 경우도 있다. 업비트 경우, 지난 7월 국내 한 프로젝트의 공시가 당일 삭제됐다. 이유는 ‘프로젝트 팀의 공식 요청’ 때문이었다. 한번 공시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 위해서는 업비트에 직접 요청해야 한다. 해당 프로젝트 관계자는 “삭제된 공시 내용은 국내 대기업 관련이었는데, 해당 대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내려야 했다”며 “업비트 공시 안내에 ‘삭제’ 내용이 없어 직접 문의해 조치했다”고 밝혔다. 커뮤니케이션 오류 내용을 담아 해당 내용은 다음날 다시 공시됐다.
쟁글에서도 최근 ‘상시 공시’ 기능이 추가되기 전 한 프로젝트의 ‘인수’ 관련 내용이 ‘공지’ 란에 올랐다 삭제된 적이 있다. 쟁글에서 공지 공간에는 프로젝트가 자체 운영하는 블로그나 커뮤니티 소통방에서 공유되는 공지 위주로 자동 게시된다. 상시 공시 기능이 추가되기 전 국내 한 프로젝트의 공식 커뮤니티 채널에 공지된 ‘인수’ 내용이 쟁글 ‘공지’란에 업데이트 된 것이다. 당시 해당 프로젝트가 당일 인수 공지를 삭제하는 바람에 쟁글에 업데이트한 공시 내용도 자동으로 없어졌다. 해당 프로젝트 커뮤니티 온라인 채팅 방에서는 이를 공시로 인식하고, 게시글이 삭제 된 정황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준우 쟁글 공동대표는 “해당 이슈는 공시 기능이 추가되기 전 ‘공지’로 올라간 내용이 삭제된 것”이라며 “현재는 상시 공시 기능이 추가됐고, 이 기능에는 공시 ‘삭제’ 기능이 없으며, 내용을 번복할 경우 다시 공시를 해 정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공시한 내용을 전면 취소하거나 부인하는 공시번복이 발생할 시 ‘불성실 공시’에 해당돼 불성실 공시 사실을 공표하거나 매매거래 정지, 관리종목 지정 및 상장폐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공시가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공시 내용에 대한 수정, 삭제 기능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업비트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주식시장’으로 볼 수 없어 ‘불성실 공시’에 대한 조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 밖에 업비트의 ‘이해상충’ 문제는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자회사 ‘두나무앤파트너스’가 티티씨(TTC)와 루나(LUNA) 프로젝트의 코인에 투자했고, 이 두 프로젝트가 모두 업비트에 상장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비트 관계자는 “투자사로서 ‘두나무앤파트너스’는 블록체인 관련 기업 투자 방식 중 하나인 해당 ‘암호화폐’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한 것”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것이며, 투자 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공지하고 있는 만큼 문제 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쟁글, “최대한 주식시장 공시 기준 갖출것”
쟁글은 내달 발표될 공식 버전에는 위와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능을 담아 최대한 전자공시시스템(DART)과 유사한 플랫폼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준우 쟁글 공동대표는 “내달 공식 버전에는 ‘정기공시-상시공시-공지’ 세 기능을 도입할 것이고, 주식시장에서 적용되는 기본적인 기준을 차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쟁글은 불성실 공시에 대한 조치도 마련해 내달 발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프로젝트 팀들이 한 번 올린 공시에 대해 삭제 기능은 없지만 ‘수정’은 있다”며 “다만 빈번하게 수정해 투자자에게 혼란을 준다면, 이를 투자자들이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양적·질적 지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시를 늦게 올리거나 하는 불성실 공시에 대해서도 프로젝트 등급이 낮아지는 등 패널티가 있을 것”이라며 “이러한 내용을 담아 9월에 운영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암호화폐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공시제가 현재 암호화폐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쟁글에 공시하는 해외 프로젝트 관계자는 “주식시장은 공시 내용이 좋든 나쁘든 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현재 공시 강제성이 없어 프로젝트가 공시를 원할 시에만 진행된다”며 “현재 시장이 덜 성숙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이전처럼 각각의 프로젝트가 자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정보를 공유했던 상황보다는 나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쟁글과 협력하고 있는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는 상장된 프로젝트사에게 ‘공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해당 거래소 관계자는 “일부 프로젝트는 실제 공시를 꺼리는 곳도 있다”며 “우리는 상장된 프로젝트 팀에게 다른 거래소의 상장심사 시 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으니 공시에 참여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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