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s B노트] 오는 12월 비트코인(3.25%)이 세 번째 반감기를 맞습니다. 투자자들은 물론, 업계 안팎의 관심이 상당합니다. 특히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날이 서 있습니다. 이들에겐 반감기가 생업과 직결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과거 두 차례 반감기 때처럼 비트코인이 수만% 올라준다면야 문제될 게 없습니다. 공급량이 절반 줄어들더라도 채굴 비용을 대고도 남습니다. 계속 채굴기를 돌릴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이번 반감기가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가격이 기대만큼 올라주지 않습니다. 과거엔 반감기가 기업 매출을 올리는 기회였는데, 이제는 당장 수익이 안 나더라도 지출을 늘리는 출혈경쟁을 해야할 판입니다.
#세 번째 반감기는 전과 다르다
비트코인은 2017년 불마켓을 계기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투자자들이 물밀듯 시장에 들어오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제도권은 경각심을 보이는 한편, 시장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투자를 넘어 투기 열풍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지나친 유명세를 탄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번 반감기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겁니다. 비트코인 채굴풀 F2Pool의 토마스 헬러(Thomas Heller) 글로벌 비즈니스 총괄은 AMB크립토에 “2012년과 2016년 반감기 때보다 올해 반감기에 대한 인식이 넓게 퍼졌기 때문에 이전만큼 강력한 불장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누군가는 2019년 6월 비트코인이 1만3000달러 이상 오르던 때 반감기 호재가 가격에 이미 반영됐다고 주장합니다. 반박도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2019년 하반기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반감기가 선반영됐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론입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반감기를 일주일 앞둔 비트코인치고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5월 7일 오전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은 9200달러대를 기록 중입니다.
#값싼 전기료로 맞붙는 시대는 지났다
채굴자들도 이번 반감기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르리라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진작 채굴을 포기했겠죠. 그런데 채굴량이 줄어들면 이들 간 해시파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게 됩니다. 이때 채굴자들은 강한 비트코인 매도 압박에 휩싸입니다. 전기료와 기타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죠. 특히 전기료 부담이 막대합니다.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입니다. 채굴기 중개 업체 블록웨어 솔루션(Blockware Solutions)의 보고서에 따르면 월 평균 54만1000개 비트코인이 채굴되는데 채굴자마다 지출하는 전기료는 서로 다릅니다. 보고서는 1킬로와트시(kWh)당 전기료에 따라 채굴자를 8개 계층(레이어)으로 구분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레이어 1. 1kWh당 전기료 0.025달러 미만, 시장점유율 5%
레이어 2. 1kWh당 전기료 0.03달러, 시장점유율 7.5%
레이어 3. 1kWh당 전기료 0.04달러, 시장점유율 15%
레이어 4. 1kWh당 전기료 0.05달러, 시장점유율 15%
레이어 5. 1kWh당 전기료 0.055달러, 시장점유율 20%
레이어 6. 1kWh당 전기료 0.06달러, 시장점유율 15%
레이어 7. 1kWh당 전기료 0.0065달러, 시장점유율 12.5%
레이어 8. 1kWh당 전기료 0.07달러 초과, 시장점유율 15%
레이어 1에 가까울수록 더 값싼 전기료로 비트코인을 채굴합니다. 레이어 5 채굴자가 20%를 차지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싼 전기료를 내는 채굴자들은 어떻게 경쟁을 할까요. 고성능의 신형 채굴기를 쓰는 게 대안으로 꼽힙니다. 2017년 2월 출시된 비트메인의 앤트마이너S9는 채굴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얻은 채굴기입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2년 뒤 나온 앤트마이너S17 프로는 S9보다 전력 효율과 해시레이트가 각각 50%, 300% 높습니다. 이 신형 채굴기를 먼저 도입한 건 레이어 3~8 구간 채굴자들입니다. 전기료 경쟁에서 뒤처지니 채굴 효율을 높여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채굴자의 전기료 계층 간 해시레이트 격차가 줄어든 겁니다. 보고서는 “값싼 전기료로 경쟁력을 얻는 시대가 지나갔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레이어 1~2 채굴자라도 신형 채굴기를 채용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낙오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채굴 계속 하려면 비트코인이 얼마가 돼야 할까
경제학 이론을 보면 손익분기점과 생산중단점이라는 게 나옵니다. 손익분기점은 일정 기간 기업의 매출액이 총비용과 일치하는 지점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손실을 보더라도 생산을 지속하는 게 최선입니다. 생산중단점을 말 그대로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생산할 때 손실이 생산 중단할 때보다 더 커지기 때문이죠.
비트코인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볼 때 채굴자들도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받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손익분기점 밑으로 떨어지면 적자 운영을 이어가야 합니다. 또한 채굴한 비트코인을 팔아 운영비를 마련해야 합니다. 매도 물량이 쏟아지니 시장은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도나도 비트코인을 매도하니 가격은 더 떨어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채굴자들이 영업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물론 시장은 탄력성이 있어 회복하기 마련입니다. 채굴자들이 채굴기를 끄면 해시레이트가 저하되고 비트코인은 채굴 난이도를 조정합니다. 채굴이 쉬워지면 채굴자들은 이익을 얻게 되고 매도 압박도 줄어듭니다. 가격도 다시 상승합니다.
의문점은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가 돼야 채굴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냐는 겁니다. 보고서는 비트코인이 5000달러ㆍ7500달러ㆍ1만달러일 경우 채굴자들이 부담하는 전기료 비중을 분석했습니다. 반감기 전후로 나눠 살펴봤습니다.
먼저, 반감기 전의 경우입니다.
(1) 비트코인=1만달러: 채굴자들은 월 평균 채굴량의 39.12%(2억1123만달러)만 전기료로 지불하면 됩니다. 전기료가 총 비용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입니다. 다만, 레이어 8에 속한 채굴자는 운영이 어려울 정도의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비트코인=7500달러: 1만달러일 때보다는 채산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전기료는 월 평균 채굴량의 53.18%를 차지합니다. 레이어 6~8 채굴자들이 지출하는 전기료가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채굴한 비트코인과 비축분 전량을 모두 내다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3) 비트코인=5000달러: 극도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전기료가 월 평균 채굴량의 70%에 육박합니다. 저렴한 전기료를 내는 레이어 2부터 8까지 적자 운영을 해야할 판입니다. 레이어 7~8 채굴자들은 신형 채굴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많은 채굴자가 셧다운을 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난이도 조정을 통해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감기 후의 경우는 위 상황과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먼저 비트코인이 5000달러일 경우 소수 채굴자가 비트코인을 나눠 가지게 되며, 매도 압박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됩니다. 시장은 안정을 되찾고 가격은 다시 오르게 됩니다. 비트코인이 7500만달러를 넘기고 1만달러에 도달하면 초기엔 채굴자들이 매도 압박을 덜 받겠지만 그간 운영을 중단했던 채굴자들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해시파워 경쟁은 다시 거세집니다. 채굴 난이도는 오르고, 매도 압박은 강해집니다. 이러한 순환 과정이 반복된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입니다.
#비트코인 ‘마법’은 한 해에 딱 열흘?
반감기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일찌감치 나왔습니다. 월스트리트 암호화폐 전문 분석기관 펀드스트랫(Fundstrat)의 토마스 리(Thomas Lee) 공동창립자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2019년 4월 트위터에서 “비트코인이 마법을 부리는 시기는 연중 열흘밖에 안 되기 때문에 반감기 이슈는 큰 영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간 비트코인은 2000% 가량 상승했는데, 매년 열흘씩 빼면 25%씩 해마다 하락하게 됩니다. 반감기가 아니더라도 해마다 한 번은 비트코인 가격이 급상승했다는 것이죠.
토머스 헬러도 최근 “비트코인 가격은 예측불허다”며 “다만, 올 연말에는 강세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반감기가 과거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는 이미 저물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보는 건 채굴자들에게 무의미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반감기 후에도 생존할 수 있느냐입니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전기료 지출이 많고 구형 채굴기를 쓰는 채굴자가 가장 먼저 낙오될 위험이 큽니다.
만에 하나 비트코인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까지 올라준다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토마스 리가 말한 마법이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결코 길지 않을 겁니다.
※필자는 현재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원문: https://joind.io/market/id/1982
※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