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커’s 크립토 스토리]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스테이블코인의 움직임이 숨가빠지고 있습니다. 테더 미국달러(USDT, 이하 테더)로 대표되는 기성 암호화폐 시장 기반의 스테이블코인들의 경우 지난 2월 후순부터 공급량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화된 시기와 맞물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한편 시중에 아직 풀리지는 않았지만 연구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도 있습니다. 바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입니다. CBDC 역시 코로나19 이후 유통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규제 당국 안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민간 중심의 제도권 스테이블코인이 있습니다. 이 분야의 대표주자에는 페이스북 주도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가 있습니다. 리브라는 지난 4월 ‘백서 2.0’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에 출시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나타냈습니다. 과연 이 세 진영 중 승리를 거머쥐게 될 곳은 어디가 될까요. 오늘 크립토 스토리에서는 각 스테이블코인 진영의 근황과 전망을 짚어봅니다.
#디지털 윤전기 돌리는 테더…지난 15일간 13억 달러 뽑아냈다
세 진영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시장의 직접적인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는 기성 스테이블코인입니다. 해당 진영에서 압도적인 거래량을 내고 있는 코인은 전체 기성 스테이블코인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 테더입니다. 곧, 테더를 알면 기성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현황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테더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지난 3월부터 발행량을 서서히 늘린 테더는 4월부터 지금까지 급격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15일간 테더 총 발행량만 계산해도 13억 4200만 달러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테더가 출범한 2015년 이후 현재까지의 총 발행량이 약 64억 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수요가 급증하는 공급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기였던 2018년 당시의 테더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공급을 늘리기는커녕 현상유지만 하던 수준이었는데도 수요가 무너지는 바람에 테더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암호화폐의 변동성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탄생한 코인이기 때문에 테더가 선택한 방법은 5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소각이었습니다. 부족한 수요를 공급 축소로 메꿔서 테더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단 2주간의 최근 발행량이 전체 총 발행량의 20%를 위협할 정도로 늘어났는데도 가격이 1달러 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 역시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계에선 수요 증대의 원인을 ▲코로나19 이후 암호화폐 가격 변동성 확대에 대한 피난처 역할 수행 ▲국경이 없다는 특성으로 인해 달러 환차익을 손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 ▲비접촉 결제수단에 대한 호기심 확대로 꼽았습니다.
#선구자 위치 점유한 기성 스테이블코인
물론 테더의 최근 행보를 제도권 양적완화와 비교할 순 없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양적완화 규모는 조 단위에 이릅니다. 기껏해야 10억 단위의 공급량을 보이고 있는 테더와는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죠. 그래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테더가 위협적인 점은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이 2380억 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결코 무시할만한 액수가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테더의 시가총액은 약 63억 달러입니다. 이는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으로 시가총액 4위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또한 세 진영 가운데 유일한 시장 플레이어로 움직이고 있는 존재가 바로 테더를 비롯한 기성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이는 실질적 시작이 이뤄지지 않은 다른 두 진영과 비교했을 때 선구자 위치를 부여 받는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성 스테이블코인의 원조격인 테더는 가장 먼저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영향력을 확보해 이젠 ‘대마불사’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독자적인 행보는 동시에 단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의심받을만한 행동이 포착되면 바로 외부 세력에게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미국 뉴욕검찰청(NYAG)이 테더사와 비트파이넥스의 모회사인 아이파이넥스를 사기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비록 이들의 재판을 맡고 있는 캐서린 페일라(Katherine Failla) 판사가 “기존 사기 혐의 사건과는 새로운 점이 많아 처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나타내긴 했지만, 기소 자체는 동떨어진 진영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진영보다 단점이 부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곧, 기성 스테이블코인은 선구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안고 있는 셈입니다. 당장 새로운 형태의 사건이라는 이유로 기소는 강력하게 받았지만, 본 판결은 조심스럽게 이뤄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 실마리는 오는 9월경 열리는 테더 재판을 통해 어느정도 풀리게 될 전망입니다.
#국가 중심으로 발전하는 CBDC…치고 나온 곳은 중국
한편 기성 스테이블코인의 대척점에는 CBDC가 있습니다. CBDC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공통분모가 있다면 주로 기존 법정화폐를 디지털화폐로 변환하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이죠. 아직까진 모든 나라가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형국입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60달러로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 ‘페트로’를 유통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실험 단계를 벗어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CBDC는 각국에서 활용될 가치가 높습니다. 코로나19 풍파를 가장 심하게 맞고 있는 미국의 경우, 정부 주도 비접촉 결제수단을 CBDC로 타개할 수 있습니다. 실행은 되지 않았지만 미국 내에서 디지털달러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이야기가 실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선 계속되는 유로존 재정위기를 모면할 방법 중 하나가 CBDC일 수 있습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은 것도 유사한 맥락입니다. 유로존 가운데 비교적 재정상태가 양호한 네덜란드는 아예 중앙은행이 “현금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유로존이 (CBDC 개발에 대한) 환경을 조성하면 우리가 주도할 준비가 돼있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각국 행보만 봐도 CBDC에 대한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아직 ‘끝판왕’이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CBDC가 아니라 DCEP(디지털전자결제화폐)라는 용어를 따로 쓸 정도로 디지털화폐에 대한 관심이 남다릅니다. 지난 4월 후순만 하더라도 중국 DCEP와 관련한 큰 뉴스가 잇따라 나왔죠. 먼저 디지털위안이 2022년 동계올림픽에 사용될 수 있다는 소식이 4월 19일(현지시간) 전해졌습니다. 21일에는 중국 국유은행인 공상은행이 블록체인 운용에 대한 백서를 내놨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22일에는 중국 슝안신구(雄安新区)내 맥도날드(McDonald)와 스타벅스에서 디지털위안 결제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슝안신구는 ‘시진핑의 도시’로도 잘 알려진 중국의 4차산업 맞춤형 도시입니다. 당장 5월부터 중국 일부 지역에선 DCEP가 부분적으로 통용된다고 하니, 여러모로 그 행보가 기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CBDC는 기존 화폐가 그대로 디지털 전환이 된다는 특성상 간단명료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뚜렷한 단점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법정화폐의 디지털화를 제외하곤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정도로 기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기성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운영 주체와 시스템 자체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해당 지적은 일정 부분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간에 낀 민간 중심 제도권 스테이블코인
마지막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중심 제도권 스테이블코인은 독특한 위치를 점유 중입니다. 우선 이 분야에 포함되는 리브라 등의 프로젝트가 기성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규제권 울타리를 확실하게 적용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민간 조직이라는 점에선 국가 중심의 CBDC에 비해 기성 스테이블코인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진영의 중간 위치에 있는 것이 민간 중심 제도권 스테이블코인인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혜택과 견제도 동시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겪었던 리브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도권의 울타리 안’에 있는 ‘대형 민간 기업’이 추진하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란 이유로 초창기 기성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규제 당국의 견제를 그만큼 거칠게 받았습니다. 기성 스테이블코인이 실체가 비교적 불명확해서 의심은 크게 받지만, 처벌 기준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규제 당국의 물리력이 훨씬 강력한 중국에선 이러한 민간 중심 제도권 업체가 더욱 국가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스테이블코인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지만, 중국에선 디지털위안을 받아내는 그릇 역할로 민간 제도권 업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초 중국 인민은행이 디지털위안을 알리페이·위챗페이·시중은행 등의 전자지갑으로 유통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먼저 통용될 스테이블코인의 주체는 민간 중심 업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IBM과 중앙은행 싱크탱크 OMFIF(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의 설문 조사 결과가 이를 반영합니다. 당시 조사 대상은 각국 중앙은행 23곳이었습니다. 이들에게 CBDC 관련 질문을 던지자 ‘(리브라와 같은) 민간 규모 CBDC가 5년 내 통용된다’는 응답률이 73%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소규모 실험에 적합한 스테이블코인에서 대규모 채택에 용이한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을 빠르게 잡아내는 진영이 어쩌면 최후의 승자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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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