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은 JOA] 가두리 양식장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부터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특정 물고기의 어획량을 보존하기 위해 울타리를 쳐서 가둬놓고 기르는 방식이 바로 가두리 양식인데요. 해당 양식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해양오염이 일어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에도 ‘가두리 펌핑’이라는 유사한 이름의 가격 부양 방식이 존재합니다.
#활짝 열린 거래소 가두리 양식장…들어올 땐 쉽지만 나갈 땐 아니다?
가두리 펌핑이란 일반적으로 특정 거래소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특정 암호화폐의 입출금을 제한할 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암호화폐가 B거래소와 C거래소에 모두 상장돼 있는 상태에서 C거래소가 입출금 제한을 진행하면 가두리 펌핑이 충족됩니다. 이때 C거래소는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A암호화폐가 기술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에 공급 변수가 제거됩니다. 곧, C거래소 내부에서 A암호화폐를 매수할 순 있지만, 외부에서 A암호화폐를 들여와 판매할 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당연히 인위적인 가격 상승을 불러오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가두리 펌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보통 2018년을 기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7년 ‘불장’ 때는 단순 상장만으로도 가격 상승이 유지됐지만, 2018년 이후부터는 그것만으로 수요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과대평가된 알트코인의 덩치가 무거워져서 다른 거래소에 특정 알트코인이 상장돼도 그 효과는 매우 짧았습니다. 짧은 상승 이후엔 되레 가격이 폭락했죠.
지금부터하는 이야기는 100% 팩트는 아닙니다. 많은 부분을 정황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과 펌핑 패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거래소가 일으킨 인위적인 가두리 양식을 의심했습니다. 우선 시점이 절묘했습니다. 2018년 불장 마감 후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자 국내외 거래소의 암호화폐 입출금 제한이 잦아졌습니다. 때로는 특정 암호화폐에 진짜 문제(하드포크 등)가 발생해서 모든 거래소가 입출금 제한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특정 거래소만 입출금 제한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입출금 제한 이유는 해킹, 타 거래소와의 가격 괴리 방지, 오류 발생 등 다양했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시가총액이 작은 암호화폐만 입출금을 제한해서 투자자들의 의심을 더욱 샀습니다. 곧,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시세 조종을 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코인에만 입출금 제한을 진행한다는 의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입출금 제한 후 해당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자 많은 사람들이 가두리 양식장에 입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출금 제한=가격 급등’이라는 공식이 암암리에 퍼졌죠. 그렇게 가두리 펌핑은 투자자들의 쉬운 입성을 유도하며 거래량 증가를 주도했고, 빠져나가긴 어려운 구조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가두리 양식장을 넘어 바다 정복에 나선 거래소
도박을 아예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는 자기가 원해서 갇힌 게 아니지만, 암호화폐 시장의 투자자는 자발적으로 양식장 먹이를 노리고 가두리 펌핑 트렌드에 참여했습니다. 한 번 양식장 먹이를 체험하면 그 맛을 잊을 수 없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 먹이보다 더 자극적인 재료를 원하게 됩니다.
때마침 가두리 양식장의 한계를 넘어 아예 바다 정복에 나선 거래소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거래소는 자체 거래소 코인을 찍어내면서 보다 적극적인 펌핑 정책을 펼쳤습니다. 가두리 펌핑은 거래소의 조작을 100% 확신할 수 없었지만, 거래소 코인은 발행 주체가 거래소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더 노골적인 펌핑이 가능했습니다. 가격 상승률 역시 가두리 펌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거래소 코인 정책은 주로 2017년 불장 끝 무렵이나 2018년 이후 새롭게 탄생한 거래소에서 시행됐습니다.
#바다가 노했다?…그 거래소들의 현황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처럼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리니 바다가 노하기라도 한 걸까요. 도덕적 관점에서의 ‘심판’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법칙상 많은 거래소 코인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2018년 거래소 코인 붐을 견인했던 올스타빗과 코인제스트의 현황은 상당히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올스타빗 경우 전직 대표가 지난 2월 20일 열린 1심 공판에서 사기죄로 1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코인제스트는 5월 25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투자자들에게 피소됐습니다. 두 거래소 모두 혐의에 거래소 코인이 깊숙이 관여됐다는 점에서 생태계 범위를 무시한 펌핑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특금법’이 발효되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올스타빗과 같은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심했다는 반증이겠죠.
#건전한 생태계를 위한 제도적 합의 이뤄져야
그렇다면, 가두리 펌핑 의혹에 대한 재판은 없었을까요. 가두리 펌핑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판례는 없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가격 조작에 포함될 수 있는 1심 판례는 존재합니다. 업비트의 ‘사전자기록위작,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과정에서 쟁점이 된 자전거래 및 허위매매 의혹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업비트가 임의 계정인 ‘아이디8’을 이용해 허위매매 거래량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일반인으로 하여금 마치 성황인 것처럼 꾸몄다는 내용이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다고 보긴 힘들다. 일반적으로 가상화폐 거래소가 허위매매를 하는 이유는 가상화폐 교환이 쉽게 가능할 것처럼 보여 잠재적 고객을 유인하게 하는데 있다. 그런데 업비트는 2017년 12월까지 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 등에 등재되지 않아 일반 투자자들이 관련 사항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검찰에서 말하는 허위매매 등이 업비트 회원 유입에 잠재적인 영향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자전거래 및 허위매매 관련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아이디8이 주문 제출 뒤 단시간 안에 그 주문을 다시 취소하고 변동된 가격으로 거래를 체결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선, 아이디8 주문 메커니즘 간격을 이야기하며 혐의 입증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검찰의 주장이 입증되려면 몇 초 간격의 초단타 메커니즘으로 주문 및 취소가 이뤄져야 하는데, 살펴본 결과 몇 십초 간격의 긴 메커니즘으로 체결이 성사됐다는 것입니다.
해당 판결에 대해 의아하다고 생각되는 독자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가 업비트 1심 판결 마지막에 판시한 내용은 의미심장했습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경우 유동성 공급자에 대한 법령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유동성 공급을 금지해야 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힌 것입니다. 곧, 거래소 회원에게 직접적인 피해(원화 출금 정지 등)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규제 불확실성의 문제로 제도권 주식 시장처럼 명확한 판결을 내리긴 힘들다는 것입니다.
결국, 보다 섬세한 판결과 건전한 생태계를 동시에 구축하려면 지금까지 쌓아온 고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제도적 합의가 중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과도한 가두리 펌핑과 거래소 코인 정책은 투자자와 생태계에 상처를 줬지만, 역설적으로 그 결과 덕분에 더 건전한 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처럼 물고기를 많이 낚기 위한 더러운 양식장 양성이 아닌, 바다·어부·물고기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적절한 생태계를 고민할 때입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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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