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민간 차원의 디지털달러 백서가 발표됐다. 백서는 ‘크립토 대디’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전(前)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이 이끄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연구 비영리단체 ‘디지털달러 프로젝트’가 작성했다. 백서에 따르면 디지털달러는 미연준-상업은행, 상업은행-국민의 이중 레이어 방식을 채택한다. 또한 중개기관의 개입 유무에 따라 계좌 기반 디지털달러와 토큰화된 디지털화폐를 구분한다. 활용 범위는 국내 및 국제결제, 재난지원금 같은 정부 혜택, 개인 간 결제 등 광범위하다. 다만, 민간 차원의 연구인 만큼 실생활에서 직접 테스트를 하는 건 정부의 몫이라는 게 프로젝트 측의 입장이다. 발행 시기는 5~10년 뒤로 내다봤다.
#디지털달러 백서 발간
5월 28일(현지시간) 지안카를로가 주도하는 ‘디지털달러 프로젝트(Digital Dollar Project)’가 30페이지 분량의 백서를 발표했다. 앞서 올 1월 지안카를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위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본격 연구에 착수했다. 지안카를로는 디지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해 줄곧 우호적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업계에선 그를 ‘크립토 대디(Crypto Daddy)’라고 부른다. 백서 발표 후 그는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코인데스크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바라는 건 디지털 시대에 돈의 미래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논쟁을 촉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연준-은행, 은행-국민의 이중 레이어
백서에는 CBDC의 시스템 구축 방안과 잠재적 활용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조적으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상업은행, 상업은행-국민으로 나뉘어진 이중 레이어 구조를 채택한다. 연준이 디지털달러를 발행해 은행에 지급하면 은행이 이용자에게 발급하는 형태다. 이중 두 번째 레이어에 관해 백서는 “은행이나 미 연준과 연계된 기타 중개기관이 지급준비금을 디지털달러로 바꾼 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기존 방식처럼 이용자에게 발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자는 디지털달러를 은행 계좌나 본인 소유의 디지털지갑에 저장할 수 있다.
이용자가 디지털달러를 스토리지나 커스터디 서비스 등을 통해 묶어 두지 않는 한, 은행은 고객 계좌에 저장된 디지털달러 예금을 이용해 대출 업무를 할 수 있다. 은행의 주요 역할인 신용창출(money creationㆍ은행이 대부를 통해 당초 예금액의 수 배 이상으로 예금통화를 창출하는 현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의도다. 백서는 “기존 화폐 유통 구조에 관한 경제적ㆍ법적 이점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중 레이어 구조는 고객신원확인(KYC)ㆍ자금세탁방지(AML) 등 금융거래 관련 규제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달러가 이동할 수 있는 종착지는 제도권 내 디지털지갑이다. 디지털달러 프로젝트는 조만간 이 부분에 대한 테스트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좌 기반 vs 토큰 기반
백서에 따르면 디지털달러는 국내 및 국제 결제, 재난지원금 같은 정부 혜택, 개인 간 결제 등에서 두루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백서는 은행 등 중개기관 유무에 따라 계좌 기반(account-based) 디지털달러와 토큰 기반(token-based) 디지털달러로 구분하며, 후자의 활용 범위가 더 광범위하다고 강조했다. 계좌 기반은 중개기관을 필요로 하는 반면 토큰 기반은 P2P 직접 거래가 가능하다.
정부가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경우엔 토큰 기반이 유용하다는 관측이다. 앞서 코로나발 경제 위기로 미국이 큰 타격을 입자 일부 하원 의원들은 디지털달러를 발행해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제안을 잇달아 내놓은 바 있다. 은행 계좌가 없는 국민에게도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려면 토큰화된 디지털달러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범위의 금융 포용 등에도 디지털달러가 쓰일 수 있도록 새 골격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는?
현금의 장점은 익명성이다. 하지만 현금이 디지털화되면 쉽게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익명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이는 이용자의 사생활 침해와 직결된 문제다.
하지만 백서는 익명성 보장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았다고 암호화폐 매체 디크립트가 지적했다. 디크립트는 “백서는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사생활보호에 관한 수정헌법 제4조를 인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정부의 손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시작… 5~10년은 걸릴 것
디지털달러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는 파일럿 프로그램과 백서에서 언급한 잠재적 활용 사례에 대한 테스트를 개발하는 것이다. 디지털달러가 통화 공급에 미치는 영향, 기술 선정, AML/KYC 등 규제 부합, 기타 우려 사항 등을 바탕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평가할 전망이다.
디지털달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예컨대 분산장부기술(DLT)을 도입할 것인지, 중앙화 모델과 완전 분산 모델, 허가형과 무허가형 중 어떤 것을 채택할 것인지 등이다. 이에 대해 지안카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디지털달러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달러를 실생활에서 직접 실험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데이빗 트리트(David Treat) 디지털달러 프로젝트 SMD(Senior Managing Director)는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디지털달러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전문성을 제공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고, 실험 영역은 속도 조절을 위해 정책 입안자들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 내 디지털달러가 모습을 비추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안카를로는 “디지털달러가 발행되기까지 5~10년 걸릴 수 있다”며 “이는 대단히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이루려고 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다만, 이제는 시작할 때라는 점을 강조했다.
#Sonia’s Note 중국 DCEP와 비교하면…
중국 인민은행이 추진 중인 디지털화폐(DCEPㆍ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와 유사점이 많다. 이중 레이어 구조를 채택해 현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디지털화폐의 혁신성과 기존 질서 간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불가피한 게 아닌가 싶다. 중국 DCEP는 모든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크다. 디지털달러 백서에도 이 부분에 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다. 크립토 대디의 디지털달러 구상은 민간 차원이기 때문에 정부에게 바톤이 넘겨지면 수정될 여지가 있다. 또한 중국의 디지털화폐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도 중대한 변수다. 어쨌든 백서는 디지털달러의 시작을 알렸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패권 전쟁을 촉발시켰다. 미 당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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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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