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장도선 특파원] 미국 등 여러 나라의 공격적 통화·재정 부양책이 궁극적으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라는 암호화폐세계의 전망과 달리 전통자산시장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중앙은행들이 천문학적 규모로 통화 공급을 늘리면서 공급이 제한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며 자산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앞으로 몇 년 내 비트코인이 10만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대부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달러 등 명목화폐 가치 급락을 전제로 한다.
코인데스크는 8일(현지시간) 세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 데이터를 인용, 미국의 5년 브레이크이븐 레이트(breakeven rate)가 지난 3일 현재 1.5%로 지난해 9월의 1.8% 보다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일반 국채와 인플레이션 연동 국채(TIPS)간 수익률 격차를 가리키는 브레이크이븐 레이트는 채권시장의 인플레이션 전망을 반영한다.
연준이 금년에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극복을 위해 3조달러 넘는 신규 자금을 금융시스템에 공급했음에도 브레이크이븐 레이트가 하락했다는 것은 전통자산시장이 당분간 인플레이션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화 공급 확대가 전통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0%로 낮추고 수 차례 양적완화로 대차대조표를 8000억달러에서 거의 4조5000억달러로 5배 이상 확대했음에도 미국의 근원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2% 목표를 밑돌았다.
코인데스크는 유럽 등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공격적 부양책으로 ECB 보유 자산이 5조유로를 넘어섰음에도 유로존의 5년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1.02%에 머물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크게 오를 전망이 없는 한 대형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비트코인에 자금을 본격 투입할 이유는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불확실성 지속, 새로운 지정학적 위기 등이 인플레이션을 크게 끌어올릴 잠재적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이번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과 기업들을 대상으로 직접 현금을 살포한 데 따른 파급 효과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서 비트코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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