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할 이슈가 없던 블록체인 생태계에 클립이 등장했다. ‘카카오톡 연동 암호화폐 지갑’이라는 수식어는 블록체인 업계가 염원하던 매스 어댑션을 이뤄주는 주문처럼 들렸다. 공개 하루 만에 10만 가입자를 돌파했으니, 사용자 확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매스 어댑션을 이뤄가는 듯하다.
동시에 클립의 기축 암호화폐 ‘클레이(KLAY)’도 이슈의 중심에 섰다. 클립 개발사이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초기 가입자 10만 명에게 50KLAY를 증정하면서 이슈몰이를 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주는 재난 지원금이냐”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KLAY는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과 가격 변동으로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그라운드X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말이다.
국내서 KLAY를 처음 상장한 곳은 지닥이다. 클립 출시 하루 전인 지난 2일에는 데이빗이, 출시 이틀 뒤인 지난 5일에는 코인원이 KLAY를 상장했다. 지닥 상장 당시 큰 변동이 없던 KLAY 가격은 클립 출시 이후 요동치기 시작했다. 클립 출시 전 170원대이던 KLAY는 최고 400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KLAY 가격이 요동치자 그라운드X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라운드X는 파트너 관계였던 지닥이 상의 없이 KLAY를 상장했을 때도 “파트너십 해지를 검토하겠다”며 강경 대응하기도 했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는 지난 7일 브런치에 ‘KLAY는 왜 필요한 것일까’라는 글을 올렸다. 한 대표는 “토큰 시세 차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클립 서비스보다 KLAY가 부각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며 “KLAY는 클립에 담기는 디지털 자산의 한 종류이지 클립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글 말미에서는 “거래소의 토큰 가치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며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렵겠지만 너무 일희일비해서 소탐대실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직원들이 일희일비할 것을 걱정할 정도로 KLAY 가격이 그라운드X 사업에 영향을 주는 걸까? KLAY는 클레이튼이라는 블록체인 메인넷에서 쓰는 암호화폐다. 그간 그라운드X는 클레이튼과의 관계에 선을 그어왔다. 그라운드X과 클레이튼은 서로 다른 주체라고. 정말 서로 다른 주체라면 KLAY 가격에 따른 직원들의 동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많은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ICO를 금지하는 정부 기조 때문에 암호화폐 발행 사실을 부정해왔다. 해외에 따로 법인을 세우고, 해외 법인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판매했으니 국내 법인은 암호화폐를 발행한 게 아니라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발행 주체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였다가, 주목을 받자 자신들이 발행한 게 아니라던 암호화폐의 가치를 설명하고 입장을 대변하는 것.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태도로 보인다. 모순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정해달라. ‘필요할 땐 내 것, 아닐 땐 남의 것’ 투자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디센터 노윤주 기자 daisy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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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