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6월 12일 한국은행 창립 제70주년 기념사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디지털혁신이 민간 영역에서 중앙은행 고유의 권한까지 미치고 있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CBDC 연구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앙은행 실시간총액결제 도입을 통한 국가간 결제 시스템 연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는 CBDC가 국가별 발행ㆍ운영되기 때문에 초국경 결제 분야에서 페이스북 리브라나 암호화폐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한은 총재 “디지털 혁신, 중앙은행 고유영역에 미쳤다”
이 총재는 이날 “디지털 혁신이 민간부문을 넘어 중앙은행 고유의 지급결제 영역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 사례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Libra)를 언급했다. 민간 영역에 속한 리브라가 페이스북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 확산될 경우, 그간 중앙은행이 배타적으로 행사해온 지급결제 분야가 민간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제도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도모해야 하는 책무를 지녔다”고 강조하며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대안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라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현재 진행 중인 CBDC에 대한 연구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앙은행 실시간총액결제 검토… 국가간 연계 가능성도
이날 이 총재는 실시간 총액결제방식(RTGSㆍReal Time Gross Settlement) 구축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주요국 중앙은행이 결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RTGS 방식의 신속자금이체시스템을 직접 구축, 운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TGS는 은행 등 금융기관간 최종 자금결제가 건별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방식으로, 최종 자금결제가 익영업일에 이뤄지는 이연차액결제 방식과 대조를 이룬다.
앞서 2월 3일 한은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RTGS방식 소액결제시스템(FedNow) 구축 추진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Fed의 FedNow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국내에도 이를 도입할 경우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민간에서 유사 시스템을 운영 중인데도 중앙은행이 RTGS방식 소액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에 대해 한은은 “효율성과 안전성이 제고될 뿐만 아니라, 특히 국내에선 차액결제리스크 축소 및 금융기관 담보부담 경감 효과, 국가간 결제시스템 연계 가능성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눈 여겨볼 만한 대목은 국가간 결제시스템 연계 가능성이다. 한은은 리브라를 계기로 국제기구 등에서 활발히 논의 중인 국가간 지급결제시스템 연계 가능성에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CBDC가 국가별 운영되기 때문에 국경간 결제 부문에서 리브라나 암호화폐보다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한 것이다. 단, 이를 위해선 중앙은행이 연중무휴 24시간 지급결제시스템을 운영해야 하며, RTGS 방식 도입시 ISO 20022(국제표준화기구가 2004년 제정한 금융업무 전반의 통신 메시지 국제표준) 등 통신 메시지 관련 국제표준 도입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올해 CBDC 연구 개발… 단, 발행은 ‘필요시’ 검토
한은이 지난 4월 발표한 CBDC 파일럿 테스트 추진 계획에 따르면 7월 내 CBDC 설계ㆍ요건 정의 작업을 마치고, 8월까지 구현기술 검토 작업을 완료한다. 9월~12월 업무프로세스 분석ㆍ컨설팅 작업을 본격화한다. 내년 1년간 CBDC 발행과 관련한 파일럿 테스트(시범운영)를 구축, 진행한다.
지난 9일 공개된 한은의 중장기 발전전략 ‘BOK2030’에서도 CBDC 관련 계획이 포함됐다. 한은은 “미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CBDC 도입과 관련한 기술적, 법적 필요사항을 사전적 검토하고 관련 연구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및 주요국 CBDC 추진 동향을 바탕으로 ‘필요시’에는 국내 CBDC 도입 위한 제반 준비작업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당장은 연구개발만 진행할 뿐, CBDC 발행을 확정짓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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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