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최종 권고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가 연일 기장 모드다. 최근 전 세계가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강화하고, 위반 시 고강도 처벌을 하면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 대응 글로벌 표준모델을 세우고 협의체(TF)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무게가 실린다.
#비대면 사회, 고객 리스크 관리 중시
6월 16일 ‘특금법과 자금세탁방지(AML) 누구에게 기회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B캐피탈리스트 세미나에서 박만성 옥타솔루션 대표 겸 금융감독원 레그테크포럼 자문위원은 “비대면 시대가 열리면서 글로벌 사회가 기존 거래 리스크 관리에서 고객 리스크 관리로 자금세탁방지 규정의 틀을 바꾸고 있다”며 “암호화폐 사업자들은 금융 규제 대응에 더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이상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이 중요했지만 최근에는 거래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에만 적용되던 위험 기반 자금세탁방지(RBAㆍRisk based Approach) 규정이 암호화폐 사업자에게도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RBA는 2016년 도입된 사전 예방 차원의 자금세탁방지 규정으로, 사업자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정한 190개 지표를 분기별 자체 평가한 뒤 그 결과를 보고하는 제도다. 기존 AML 규정인 고액현금거래(CTR)와 혐의거래(STR)의 보고, 고객확인(KYCㆍWatch List Filtering) 의무 외에 사업자가 직접 위험요소를 도출한 뒤 이를 줄이는 활동을 지속하도록 강제한다.
#위반 시 ‘괘씸죄’ 적용
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 이행이 중요한 것은 위반 시 처벌 수위가 세기 때문이다. ‘괘씸죄’라 할 수 있는 징벌적 규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른 범죄보다 고강도 처벌이 가해진다. 예컨대 의심되는 거래를 적발하고도 보고하지 않거나, 계좌 신규 개설 시 고객확인을 하지 않으면 건당 18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의심되는 거래나 고액현금 거래를 거짓 보고할 경우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병과 가능).
해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미국 금융 당국은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위반한 해외 기업을 상대로 천문학적 규모의 과태료를 때리고 있다. 2017년 NH농협은행 뉴욕지점이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100억원 과태료를 물은 데 이어, 지난 4월엔 IBK기업은행 뉴욕지점이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1000억원 규모의 과태료 폭탄을 맞았다.
#절차만 잘 지키면 처벌 안 받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에 따라 세계 각국이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신설, 강화하면 국내 암호화폐 사업자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자금세탁방지 업무는 ‘기능’이 아닌 ‘절차’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문제 발생 시 사업자가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자금세탁방지 통합업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중요한 건 리스크를 빨리 인지하고 통제, 관리(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자동화, 알람 기능 등을 지원하는 ‘자금세탁방지 통합업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트래블룰, ‘기술’ 아닌 ‘합의’의 문제
송금자뿐 아니라 수신자의 신원확인을 의무화한 트래블 룰(Travel Rule)에 대해 그는 최근 업계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래블 룰이 처음 거론됐을 때만 해도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등 블록체인 업체들은 산업의 음지화, FATF 비회원 국가에 대한 차별 등을 우려해 트래블 룰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면서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 산업 규제화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며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트래블 룰이 ‘기술’의 문제가 아닌 ‘합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업자들이 서로 연합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업자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FATF는 올 6월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한 차례 수정을 거친다. 하지만 기존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권고안이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최종안 발표 후 1~2개월 내 특금법 시행령이 공표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징벌적 벌금, 강제 퇴출 등 강력한 규제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사업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박 대표는 ‘할 수 있는 것부터 이행하라’고 권고했다.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AML/RBA 시스템 구성 요소 중 적용 가능한 것부터 구축하라는 설명이다. 또한 대형 업체를 주축으로 규제 대응 글로벌 표준 모델을 확립, 보급하고 FATF 규제 공동 대응 협의체(TF)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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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디와의 전제 계약을 통해 게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