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강주현 기자] 강병진 해시드 변호사가 “한국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기술 이해도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6시부터 진행된 ‘코리아 디파이 로드쇼’에 연사로 참여한 그는 ‘해외 입법사례를 통해 보는 한국의 특금법’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아 이와 같이 발언했다. 강 변호사는 “특금법 개정안에는 개인 키, 스마트 계약 등의 기술 언급은 일절 없다”며 “가상자산이라는 단어보다는 시행령으로 위임한다는 구절이 많다”고 말했다.
또 “훌륭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며 “업계를 이해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기술 기반의 규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금법은 자금세탁행위와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 등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이지 암호화폐 진흥법이 아니다”라며 “블록체인이 발전하기 위해선 별도의 진흥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금법 개정안과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권고 사항을 비교했다. 특금법 개정안에서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을 매도·매수·교환·이전·보관·관리 등 여러 행위를 하는 사업자를 뜻한다. FATF에서 권고하는 가상자산사업자에는 사업자뿐만이 아닌 대리행위자, 법정화폐와 가상자산 간의 교환, 가상자산을 통제 가능하게 하는 수단, ICO(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초기 개발 자금을 모집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나눠주는 행위) 발행인, 가상자산 권유·판매에 참여했거나 이와 관련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자가 포함된다.
강 변호사는 FATF와 특금법이 정의하는 가상자산사업자의 차이점으로 ▲법정화폐와 가상화폐간의 연계성 명시 ▲ ICO 등 기술 명확한 언급 ▲ ‘영업으로 하는 자’의 법적 해석 ▲ ‘가상자산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의 존재를 꼽았다. 암호화폐 규제에 진보적인 프랑스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프랑스는 업계나 국민의 의견 수렴에 소극적이었던 국내 특금법 개정안과는 달리 600개가 넘는 이해관계자에게 의견을 듣고 30개의 시행안을 추려 국민에게 관련 의견을 제안받았다. 2개월에 거쳐 온라인으로 진행된 공개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기업성장 및 혁신적 전환을 위한 실험계획 법안’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 ICO 발행을 위해 비자를 선택적으로 허용하는 ‘공모형 ICO 승인 선택 제도’ ▲ 디지털자산 취급업자(우리나라의 가상자산사업자와 같은 의미) 인가 선택 제도 등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사업자는 9가지 유형 중 의무등록 대상을 선택해 지정해야 하며, 법정통화를 매개로 디지털자산 판매·수탁 사업 등을 진행할 수 있다. 사업자는 디지털 자산 투자펀드를 결성할 수 있으며, 벤처펀드 운용자산의 총액 중 20%를 디지털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프랑스의 공모형 ICO 비자는 비자신청서 접수 당일부터 20일 이내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승인 거부 판정에는 정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비자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모 방식의 ICO 모집 절차를 밟을 수 없다. 프랑스는 승인 받은 ICO 업체가 보다 쉽게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계정 접근권을 법적으로 보장한 법조문을 신설했다.
강 변호사는 “FATF 권고 때문에 부랴부랴 특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한국과는 다르게 프랑스는 기술이해를 바탕으로 법안을 만들었다”며 “아직 프랑스에서 승인 받은 공모형 ICO는 2개에 불과하지만 ICO 이후 시장에서 반응을 얻기 시작한 STO(암호화폐를 발행한 회사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투자자에게 증권형 토큰을 발행하는 것)를 생각하면 규제가 명확한 프랑스 같은 사례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영업으로 하는 자’의 법적 해석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특금법 개정안에서 언급한 ‘영업으로 하는 자’는 지난 달 국회에서 열린 특금법 세미나에서 이해붕 금융감독원 부국장이 처음으로 설명했다.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계속적 또는 반복적인 방법으로 하는 행위’를 뜻한다. FATF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직업이 아닌 개인, 개인간 거래에 초점을 맞춘 P2P 플랫폼, 자신을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가상자산으로 구입한 개인, 단순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지갑 제조업자, 비보관지갑(논커스터디형) 지갑 제공자는 가상자산사업자에서 제외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FATF 권고에 비춰봤을 때 특금법 상 가상자산사업자가 아닌 사업자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며 “국내 특금법에는 ‘제3자를 대리하는’ 등의 문구가 빠져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통화감독청이 지난 달 은행의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 허용을 발표하면서 말한 “암호자산의 개인키를 보관하는 등의 형태로 제공되는 암호자산 커스터디(수탁)” 등의 사업 영역을 언급했다는 점에 대해 설명했다. 단어 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게 법률인만큼, 법안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에도 신중해야 되는데 가상자산사업자 범위를 뭉뚱그린 특금법과 각 기술 영역 별로 정확히 구분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비교한 것이다.
강 변호사는 그 연장선상에서 끝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에 대한 정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보관과 비보관 지갑 솔루션 제공자 차이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며 블록체인에서 가상자산을 소유·보관·이전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상자산은 무형자산이기 때문에 실물화폐처럼 지갑 안에 정말로 들어있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 상 남아있는 증표가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상자산을 보관한다는 것은 투자자가 개인키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란 사실을 명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 영국이 지난해 개정한 ‘자금세탁 및 공중협박자금조달 개정안’을 예로 들었다. 해당 개정안에서 영국은 가상자산사업자를 “고객의 개인키를 대신 관리하며 가상자산 예치·보관·마진 영업 등을 진행하는 사업자”라고 명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