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인터넷이 세상에서 막 주목 받을 때 일입니다. 90년대 중반.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있었어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입니다. 당시 미국을 포함해서 전세계 경제가 좋았거든요. 중국은 존재감도 없을 때죠.
1996년 12월 이 양반이 연설을 해요. 통화정책, 중앙은행, 민주주의 이런 얘기를 하다가 의문형으로 두 문장을 던졌어요. 그대로 옯겨봅니다.
“But how do we know when irrational exuberance has unduly escalated asset values, which then become subject to unexpected and prolonged contractions as they have in Japan over the past decade? And how do we factor that assessment into monetary policy?”
미국 주가가 이날 20% 떨어집니다. 경고거든요. “비이성적 활력(irrational exuberance)으로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통화정책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2021년으로 돌아옵니다.
암호화폐 시장만큼 뜨거운 곳이 주식시장이죠. 미국에서는 게임스탑(GME)이라는 종목이 핫합니다. 레딧에 월스트리트베츠라는 증권 투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여기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종목입니다. 월스트리트베츠는 개미 천국이에요.
GME는 평범한 비디어게임 판매점입니다. 이 회사가 폭망할 걸로 예상한 공매도 세력이 엄청붙었거든요. 월스트리트베츠에서는 반대로 ‘숏샐링 타도’, ‘GME 가즈아’ 구호가 넘쳐났습니다.
결과는 개미의 승. GME는 올해 들어서만 더블이 올랐습니다. 26일에도 90% 폭등.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기여를 합니다. 장마감 후에 트윗을 날린 거에요. ‘Gamestonk!’ 이렇게요. GME 투자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거든요. 공매도 세력들을 맹폭해서(stonk) 날려버리라는 의미에요.
머스크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한 개미들은 신이 났죠. 장마감 후 시간외 거래에서는 50%가 더 상승해요.
머스크 트윗으로 주목 받은 종목이 어제 또 있었어요. 엣시(Etsy)라는 수공예 전문 온라인 쇼핑몰이에요. “엣시를 좋아해. 여기서 반려견 모자를 샀어”라고 트위터에 남겼거든요. 200달러하는 주식이 장 열리자 마자 225달러로 급등했습니다.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기는 했지만요.
머스크의 트윗질은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유명하죠. 도지코인이 대표적이죠.
머스크, 비트코인 대량매매 질문…마이크로스트레티지 CEO와 트윗
GME처럼 개미들이 뭉쳐서 공매도 세력을 벌벌 떨게 하는 주식들이 몇 개 더 있어요.
대표적으로 백화점 기업 딜라드(Dillard’s)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급등했어요. 주가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서 월가 분석가들도 경계감을 보일 정도입니다. GME랑 닮은 꼴이죠.
월스트리트베츠에서 많이 회자되는 종목으로 블랙베리도 있습니다. 아이폰, 갤럭시 이전 스마트폰을 평정했던 블랙베리, 바로 그 회사입니다. 주가가 너무 오르니까, 조회공시를 했는데요. “주가 급등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어요.
유명인이 좋다고 해서, 명망가가 관심이 있다고 해서, 게시판에 언급이 많이 되어서…”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도깨비 같죠.
투자를 어떻게 이성적으로만 하겠습니까마는, 주변에 휩쓸려서, 누가 얘기했다고 해서 사는 것도 리스크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린스펀이 30년 전 얘기한 비이성적 활력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역사는 결국 반복되기 때문인데요. 1996년 그린스펀이 경고를 한 후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꺼질 때까지 4~5년간 주가는 더 올랐어요. 물론 버블 붕괴 이후는 참혹했죠. 그 전에 우리나라는 IMF를 맞기도 해요. 그린스펀도 이성의 힘을 압도하는 시장의 힘을 제어하는데 실패합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으세요. 그러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겁니다. 그린스펀도, 머스크도, 말빨쎈 인플루언서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