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미국은 달러 자체가 상품입니다. 달러 표시 국채를 발행하면 전 세계에서 사줍니다. 달러를 찍으면 전 세계를 돌면서 무역에 쓰이죠. 강력한 달러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연준 회계 장부를 보면 아찔합니다.
# 연준의 고민
미국 중앙은행 연준의 밸런스 시트(회계 장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방어를 위해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이는 바람에 보유 자산이 7조5901억 달러까지 불어났어요. 2007년 6월까지만 해도 8702억 달러였거든요. 9배 가까이 몸집이 불었습니다.
위기가 지나가면 줄이기는 할 겁니다. 다음에 올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요. 금융위기 때 불어난 자산을 줄이는데 10년 넘게 걸렸어요. 2019년 8월까지 3조8000억 달러로 떨어뜨렸죠.
2013년 5월에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려하자 시장이 공포에 떤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이 벤 버냉키였습니다. 이 분 별명이 헬리콥터 벤이에요. 돈을 마구 뿌린다고 해서요. 버냉키가 돈을 조금 덜 뿌린다고 하니까 시장이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시장도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는 겁니다.
버냉키 다음 의장이 재닛 옐런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초대 재무장관으로 컴백했죠. 옐런도 의장 시절에는 자산 규모를 거의 줄이지 못했어요.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팔면 시장 금리가 올라가니까 안됩니다. 채권 만기까지 들고 있다가 상환 받는게 상책입니다. “줄이지 말고 계속 들고 가자”는 얘기도 살살 나오나봐요. 아무튼 이런 사정 때문에 “달러의 힘이 약해지는거 아냐, 금리가 확 오르는거 아냐” 걱정을 하는 겁니다.
# 오일머니→칩머니
미국과 교역할 때, 기타 다른 나라와 무역할 때 기본이 되는 돈이 달러에요. 원유도 마찬가집니다. 1970년 오일쇼크 이후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오일머니를 축적했습니다. 석유가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니까요.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미국이 다 막아줬습니다. 미국의 이익에 반하면 군사 행동도 불사했죠. 사우디를 포함해서 친미 정권은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대신 경제적으로는 오일달러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경제 구조가 바뀌고 에너지에 대한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탄소 배출을 줄이자고 하고, 전기차, 재생에너지 투자를 얘기합니다. 전기차를 움직이는 배터리와 각종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국가 전략 자산이 됐습니다. 석유처럼요.
# 지정학적 위험과 경제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핵심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에요. 두 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칩머니)이 지난해 처음으로 사우디의 오일 수출액(오일머니)을 앞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 기준 칩머니는 1879억 달러. 사우디 오일머니는 1650억~1700억 달러로 추정. 한국무역협회, 대만 재무부, 사우디 재무부 통계. 사우디 오일머니는 2020년 3분까지 888만 달러)
지정학적으로는 한국과 대만이 모두 ‘미국의 적(?)’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어요. 미국 우산 밑에서 한국은 경제 발전을 이뤘고, 대만도 최소한의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
‘오일머니=달러’ 공식이 ‘칩머니=달러’로 이어질까요? 대만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중국은 이란, 이라크 정권과는 사이즈가 다릅니다. 북한도 미국 말을 징하게 안듣는 나라에요.
#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삼성전자는 미국에 더 많은 공장을 지으라는 권유를 받을 겁니다. 칩달러 체제도 튼튼히 해야하구요. 중국도 삼성전자에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어요. 인민은행에 삼성전자 계좌를 만들어주겠다. 반도체 결제를 디지털 위안으로 하자. ‘칩머니=위안’ 공식을 시도하는 겁니다.
사우디 왕가는 미국 편에 서서 정권 보장과 오일달러를 택했습니다. 달러의 힘은 오일의 힘과 결합했죠. 삼성전자와 TSMC는 어떻게 할까요? 한국 정부와 대만 정부는 뭘 주고, 뭘 받아야 할까요?
디지털 위안과 디지털 달러는 접근 방법이 다릅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은 기술적으로 상업은행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상업은행들을 인민은행 출장소로 만들 힘이 있어요. 이 거대한 싸움 속에서 중립적인 제3의 선택이 가능할까요? 국제 무역 거래에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 디지털 돈의 미래는 반도체가 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