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벌들은 무리로 모여살아요. 작은 육각형 방들이 서로 위 아래, 좌 우로 연결돼 하나의 구조를 이뤄요.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쓰는 벌집계좌는 어떤 계좌일까요? 한덩어리인데 작은 방으로 촘촘히 나눠진 벌집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돼요. 거래소가 만든 계좌를 촘촘히 나눠 고객들이 쓴다고 보면 돼요. 벌집속의 육각형 하나가 나의 계좌가 되는 셈이죠.
거래를 할 때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해요. 그러나 벌집계좌는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니라는 단점이 있어요.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달이 나면 처리할 방법이 없어요.
“서울 달빛 아래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가 자리 보곤 가랑이 넷이어라
둘은 내엇고 둘은 뉘에고
본다 내해다마난 앗아 간 걸 어찌하릿고”
처용가 아시죠? 슬픈 일이예요. 내 것인줄 알았는데 남의 것이라니! 벌집계좌도 마찬가지죠. 은행에 내이름으로 된 계좌가 아니예요. 거래소 계좌에 내돈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내가 들여다 보고 있는 잔액은 은행이 내 돈이라고 보장해 주는 돈이 아녜요.
거래소가 ‘당신 돈이 얼마다’라고 표시해 준 돈이예요. 잔액을 은행이 보장해 주는게 아니라 거래소가 보장해 준다는 의미는 뭘까요? 거래소가 망하거나 거래소 경영진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횡령할 경우 돈을 돌려 받을 길이 없어요.
정부가 법률과 공권력으로 보호하는 금융시스템 밖에 있다는 얘기죠. 정부에게 하소연 하기도 힘들어요. 아내를 빼앗긴 마음과 내 돈을 뺴앗긴 마음. 뭐가 더 가슴이 아플까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종종 일어나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내 이름으로 된 실명계좌가 안전해요. 특금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제는 법인명의 계좌인 벌집계좌는 쓸 수 없어요. 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정)’ 계약을 맺지 못한 암호화폐 거래소가 사용 중인 벌집계좌(법인계좌)는 특금법상 유예기간인 9월24일까지만 사용할 수 있어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요건에 실명계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죠. 실명계좌를 열지 못하는 거래소는 문을 닫을 수도 있어요. 고객들은 내 돈이 어떻게 될 지 불안해요.
정부가 실명계정을 요구하는 것은 ‘내 돈을 보호해 주려는 이유’도 있지만 ‘내 돈을 들여다 보려는 이유’가 강해요. 처용의 다리를 ‘지켜주겠다’기 보다는 ‘지켜보겠다’는 생각이 강하죠.
정부는 암호화폐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 롤러코스트 같은 가격변화 때문에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싫어해요. 때문에 특금법을 통해 암호화폐가 범죄행위에 쓰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거래소가 고객돈을 가로채는 것을 막는 수준에서 특금법을 개정했어요.
내년부터 시행하는 암호화폐 양도차익과제를 위해서는 거래소를 통해 납세정보를 파악해야 해요. 특금법은 암호화폐산업을 지원하는 법은 아니예요. 업계에서 산업으로서 암호화폐산업을 지원. 규제하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이유죠.
블록체인은 육성하돼 암호화폐는 규제한다는 정부정책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혁신금융에서 소외된 갈라파고스제도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