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재영 기자] 정부가 가상자산(암호화폐) 상장심사에 대한 개입을 머뭇거리면서 소비자 보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간 가상자산거래소들의 부실한 상장심사로 인해 각종 피해가 발생해왔지만 정부는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시장의 투명성이 형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개최하고 ‘가상자산 거래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 부실한 상장심사로 각종 피해 발생하지만…정부, 시장 위축 우려하며 유보적 입장
이날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가상자산 사업자가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의 거래를 금지하고, 가상자산사업자나 임직원이 해당 거래소에서 거래하는 행위를 막기로 했다.
가상자산 상장 심사 규정 마련과 관련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규제당국이 상장 심사 과정에 개입할 경우 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다며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들었다.
일본의 경우 가상자산 상장 시 우리나라 금융당국에 해당하는 금융청의 화이트리스트 코인 심사를 거치도록 해 불량코인을 걸러내고 있는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대장주 위주로만 거래가 집중되고 기타 코인들의 성장은 정체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그간 일부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제대로 된 상장 심사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해왔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허위공시로 불량코인이 생겨나고 시세를 조작하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 업비트는 허위 공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고머니2를 상장 폐지한 바 있다. 고머니2는 반려동물 종합 플랫폼을 운영하는 ‘애니멀고’에서 개발한 가상자산이다. 애니멀고가 업비트를 통해 초대형 투자유치를 받았다고 공시하자 가격이 급등했지만 곧 허위 사실로 밝혀졌다.
4월에는 아로와나토큰이 상장한지 하루 만에 무려 1천 배나 급등하면서 시세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상장 직전 투자설명서와 같은 백서에서 프로젝트 책임자와 주요 참여 인원이 삭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탕을 노린 작전 세력들이 ‘장난’을 쳤다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이처럼 가상자산 상장을 둘러싸고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처벌할 수도 없다. 아직 가상자산은 법적으로 인정되는 금융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상자산을 규제하는 법은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특정금융정보법뿐이다.
◆ 거래소 자체적으로 상장심사 관리…내부 규정 강화했지만 한계 명확
현재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자체적으로 상장심사위원회를 꾸리고 상장 및 폐지를 관리하고 있다. 업비트는 상장 심사 원칙은 ▲ 프로젝트의 투명성 ▲ 거래의 원활한 지원 가능성 ▲ 투자의 공정한 참여 가능성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총 21개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코인원은 ▲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가능성 ▲ 지배구조의 투명도▲ 토큰 분배계획 ▲비전과 가치 ▲ 시장 규모 ▲ 실제 사용성 ▲ 팀 구성: 리더십 ▲ 기술 ▲사업개발 및 운영 ▲로드맵 달성률 ▲국내 시장성 등 9가지 상장심사 기준을 뒀다.
빗썸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상장 유지 여부를 판단하고 심사하는 상장 적격성 심의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코빗은 상장 심사 시 ▲ 팀 구성 ▲ 지속성 ▲ 투명성 ▲ 확장성 ▲ 사용성 등 다섯 가지 항목을 평가하고 법률 검토와 상장 심의위원회 검토 절차를 거친다.
상장심사 과정이 부실하다는 지적에 거래소들은 이처럼 심사 규정을 강화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사실상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재단이 상장 가격과 발행 물량, 공시 등 대부분을 결정하고, 거래소는 재단이 낸 프로젝트 백서를 검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허위공시로 인해 상장폐지되더라도 다른 거래소에서 버젓이 거래되기도 한다. 고머니2는 업비트에서 상장폐지된 이후 빗썸에서 거래가 계속되다 최근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 업계 “소비자 피해 막으려면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이에 업계에서는 당국에서 상장과 관련해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기본적인 규정이 존재해야만 소비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고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아직 가상자산에 대해 정확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생리나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장심사만 하더라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일 금융위원회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중에서 ISMS(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획득한 20개 거래소 관계자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상장심사와 관련된 내용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상장심사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너무 강한 규제는 미래 전망이 밝은 벤처의 성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이 알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영 기자(huropa@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