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시중은행들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의 실명인증 계좌 발급 제휴에 고민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입장에서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 24일까지 은행의 실명 계좌 제휴가 필요하지만, 은행들로서는 제휴에 따른 이득만큼이나 실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 은행들, 가상자산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제휴 고민…농협 “위험평가기준 통과 후 재계약 여부 논의”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의 자체적인 위험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현제 제휴한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과 코인원이 은행의 위험평가 기준을 통과하면 이후에 제휴 연장을 위한 재계약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자체적인 자금세탁방지 위험평가기준을 만들어 거의 완성 단계이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다”라며 “제휴한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원과 빗썸에 위험평가서류를 요청해 코인원으로부터는 위험평가 관련 서류를 받았고 빗썸으로부터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농협은행은 신중한 입장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평가기준이 마련되면 실사를 통해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재계약이 된다, 안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협은행 자체적으로 마련중인 위험평가기준을 통과해야 재계약 여부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빗썸과 코인원 모두 6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데 오는 7월 말 농협은행과의 실명 계좌 발급 제휴가 끝나 이를 연장하거나 새로운 제휴처를 찾아야 한다.
이에 농협은행은 현재 위험평가를 위한 관련 서류를 제출받고 있는데 코인원은 제출을 완료했고, 빗썸은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
빗썸 관계자는 “자금세탁방지 위험평가를 위한 실사 자료는 현재 정리중으로 준비되는대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농협은행 외에도 코빗과 제휴를 맺고 있는 신한은행의 제휴 기간은 다음달 말까지다.
이 밖에 케이뱅크는 업비트와 이달까지 제휴를 맺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제휴 기간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며 “케이뱅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비트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계약에 대해서는 재계약 등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 아직 제휴 없는 은행들도 고민중…”득보다 실 많을수도” 신중론
거래소와 이미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들이 고민하는 상황에서, 제휴를 맺지 않은 은행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과 관련해 어떤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논의는 하고 있지만 실명 계좌 발급을 논의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도 “현재 제휴를 진행중인 가상자산 거래소는 없고, 지금으로서는 제안이 들어와서 검토중인 사안도 없다”라고 밝혔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까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고 은행과 협약해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운영을 할 수 없다. 거래소의 실명 계좌 연결 여부의 결정권이 은행에게 있으니 은행의 선택에 따라 상당수 거래소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로서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실명 계좌 발급을 해주면 신규 고객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수수료도 챙길 수 있어 시장을 선점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와 거래하는데 따른 이득만큼이나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부담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지난달에서야 가상자산 관리·감독 기관으로 정식 지정되면서 이제서야 규제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구체적인 세부 감독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가상자산 거래소와 손을 잡기가 어렵다.
은행과 제휴를 맺은 거래소에 문제가 발생하면 실명 계좌 발급해 준 은행으로서는 책임 소재 논란이 일 수 있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연결된 계좌가 자칫 대포 통장의 대체 수단 등으로 활용될 수 있어 자금세탁방지와 관련된 리스크가 가장 크다.
국내 규제 뿐만 아니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트래블 룰’까지 신경써야 한다. 트래블 룰이란 가상자산 송금 시 발신자와 수신자의 신원 확인을 의무화하는 규제다. 또 해외에서 거래된 가상자산이 국내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외국환 거래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암호화폐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세부적인 관리 감독 규제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통제가 중요한 은행으로서는 실명 계좌를 발급해 준 은행의 책임 범위가 불분명한 면이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며 “은행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