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통위원 “한국, 디레버리징 16년 간 한 번도 발생 안해”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기준금리 인상과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만으로는 가계부채를 잡기 어렵다며, 가계대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은행에 추가 자금을 적립하도록 하는 ‘경기대응 완충자본’을 병행해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주장이 나왔다.
18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금통위에서 상당수 금통위원들은 당국의 가계부채 규제에도 불구하고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 가계 대출 여전히 높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와 대출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 증가액은 줄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9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조원 증가했다. 전달인 10월 증가액(5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다. 11월 기준 월 증가액으로는 2013년 11월(1조9000억원)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11월 말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GDP(명목·1933조1524억원)의 54.9%에 달하는 규모다. 전 금융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3분기 가계대출(1744조7000억원) 기준으로는 GDP의 90.3%에 달한다.
한 금통위원은 “근본적으로 가계대출은 주택시장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DSR 규제만으로 대출증가세를 관리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가계대출 증가를 제어할 만한 대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으며 그 중의 하나로 ‘경기대응 완충자본’을 시도해 볼 만하다. 이 대책이 가계부채의 연착륙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은행에 추가 자본 쌓아라
이에 대해 한은 관련부서는 “금융당국에서 계속 검토 중이기는 하나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경기대응 완충 자본’은 위기 시 손실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은행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의무화 해 호황기에는 대출을 억제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적립한 자본을 소진해 실물 부문에 공급하는 정책수단이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을 빠르게 늘리는 은행에 추가 자본을 더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은 또 가계부채 풍선효과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DSR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대출을 중심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규제를 계기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기조적으로 둔화되면서 가계 디레버리징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련부서도 “현재 DSR 규제대상에서 제외된 전세자금대출, 중도금·이주비 대출, 주금공 모기지론 및 여타 햇살론 등이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디레버리징을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향후 이들 대출은 중·저가 주택에 대한 수요와 맞물려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은 “최근 위험자산 투자와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진정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높은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과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 등을 감안할 때 금융불균형 상황의 가시적 개선은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조달 비용의 정상화 노력과 관련당국 간 정책협조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부채 축소, 디레버리징 없었다” 우려
우리나라는 지난 16년 동안 디레버리징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등 가계 부채가 심각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2000년대 이후 주요국에서는 가계 디레버리징이 서브프라임 사태, 유럽 재정위기 기간 외에도 비교적 빈번히 나타났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6년 동안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가계의 레버리지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주요국에서 가계 디레버리징이 나타났던 기간에 실물경기는 어떠한 흐름이었는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대출과 주택시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 뿐 아니라 통화정책의 영향을 받는 만큼 이와 관련한 분석을 보다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가계대출의 증가가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결과인지 아니면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인지에 대해 보다 엄밀한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에는 가계대출이 가격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해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나 주택가격이 크게 오른 이후에는 높아진 집값과 전세가격으로 인해 대출증가가 뒤따르는 현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강도 대출규제로 가계대출은 둔화됐지만 은행의 영업 강화로 기업대출이 늘어나면서 전체 대출에는 큰 변화가 없다며 통화정책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기업대출은 9조1000억원 증가한 1068억4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1월 증가액 기준으로 관련 통계 편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 금통위원은 “가계대출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기업대출이 확대됨에 따라 전체 민간신용의 흐름에는 큰 변화가 없으며, 광의통화(M2)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등 완화적인 금융여건이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지표금리 상승과 규제 영향이 맞물리면서 가계대출금리가 큰 폭 상승했으나 대기업대출금리는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상당폭 하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가계대출 취급이 어려워진 은행들이 대기업 대출을 확대하면서 대기업 대출금리를 낮게 가져가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따라서 현재와 같은 거시건전성 규제 방식으로는 전반적인 민간신용의 흐름을 조절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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