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프로메타연구소 최창환 소장] 당신이 희망입니다. 새해는 희망으로 열립니다.
힘들었던 많은 일들은 새해 첫날이 열리면서 바람과 파도와 해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환성에 쓸려 사라집니다.
크립토세상은 2022년이 더 큰 희망의 해입니다.
2022년 크립토는 몰려오고 있는 먹구름속의 한줄기 희망입니다.
레이 달리오 등 많은 투자의 대가들이 경제 위기와 커다란 쓰나미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와 펜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의 홍수가 이제는 경제위기를 초래할 위험 요소가 된 것입니다. 위험이 우리들을 어떻게 할퀼지 아무도 모릅니다.
위기론자들은 고장난 시계로 놀림을 받습니다. 위기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이죠. 위기의 씨앗은 항상 주변에 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항상 위기를 막기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한번 닥치면 경제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위기가 닥칠 확률은 점점 커지고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마이너스 금리, 통화 살포, 높은 부채비율, 자산가격 폭등, 빈부격차 확대 같은 대공황이나 금융위기 직전에 나타난 현상들이 지금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빚으로 벌인 잔치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각국 정부는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성공을 바랍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위기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바람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위기에 대처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설프게 취해있다가 숙취에 빠진 상태에서 남들이 먹고 나간 잔치판의 설거지를 할 수가 있습니다.
위기 때 항상 금과 은을 보유한 사람들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발행량이 제한됐고 돈의 뿌리가 이들 금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실물보다 거대 자본과 정책 당국의 가격 조절이 가능한 선물이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금과 은도 가치저장수단으로써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새로운 물건이 생겼습니다. 돈의 홍수로 댐이 무너졌을 때,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암호화폐가 몸을 의지할 수 있는 방주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암호화폐를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으로 나눴죠. 지금은 NFT 등 다양한 자산이 쏟아져 나와 단순히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비트코인은 혁명으로, 다른 알트코인을 포함한 다른 가상자산은 혁신으로 부르겠습니다.
2022년은 혁명의 기운과 혁신의 성공이 좀 더 가시화 할 전망입니다.
비트코인은 혁명입니다. 새상울 싹 바꾸는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신과 국가를 분리했습니다. 왕이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았다는 왕권신수설에 기반한 왕정을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천부인권론으로 바꿔 공화정을 만들었습니다.
비트코인은 국가와 돈을 분리하는 혁명입니다.
돈을 찍어내는 국가는 결국에는 국민들을 배신했습니다. 망하지 않은 국가가 없으니 망하지 않은 돈이 없는 것이죠.
비트코인은 중앙정부같은 신뢰기구가 만든게 아닌 스스로 수학공식과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작동하는 혁명적인 돈입니다. 비트코인 진영 내부에서 거래에 쓰이는 화폐냐, 가치저장수단이냐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국가와 분리된 돈이라는게 비트코인의 실체입니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에너지 낭비나 비효율 등 많은 지적을 받으면서도 작업증명방식(POW)을 고수하고 지분증명(POS) 방식의 코인을 싯코인(똥코인)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된 비트코인이 정부가 화폐 인플레이션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되면 땀의 댓가가 앉아서 줄어들고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월급노예가 돼야 합니다. 정부 발행 피아트머니 아래서는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인플레로부터 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기관들 중 이같은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례가 올해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물가가 올라서 못살겠다는 곡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혁명은 민생이 질곡에 빠져있을 때 나타나고 성공합니다.
이더리움이나 NFT 등 다른 가상자산들은 기존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 세상으로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들입니다.
비트코인을 프랑스 혁명에 비유한다면 이더리움과 알트코인들은 왕권과 귀족들이 합의한 영국의 명예혁명과 유사할 수도 있겠네요
이더리움 위에서 기존 금융의 판도를 바꾸는 탈중앙금융(DeFi)이 탄생했습니다. 혁명으로 불려도 무방합니다. 여기서 혁신이라는 이유는 비트코인은 효율을 포기하고라도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하는 반면 이들은 효울성과 편의성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는 것이죠.
이더리움이 POW을 포기하고 소유자들이 의견을 결정하는 POS 방식을 채택하고 많은 프로젝트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빠르고 값싼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온라인 세상(메타버스)으로 들어가고, 중앙 집중 회사들이 독차지 하던 게임 아이템 관련 이익을 참여자들(P2E)에게 돌려주고, 중앙서버를 가진 SNS(웹2)를 참여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웹3 SNS로 만드는 등 블록체인을 사용한 혁신은 혁신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혁명적입니다.
미술을 예로 볼까요. 오프라인에서 그림을 표현하는 화폭이 벽이나 종이, 나무, 철 등으로 확대되고 물감과 붓의 종류도 다양해 지고 표현기법이 확대돼 왔습니다. 미술 NFT는 이러한 발전이 디지털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 영역이 좁은 지역적 공간에서 대륙을 넘고 바다 속으로 우주로 넓혀지고 있듯이, 0과 1로 이뤄진 무한한 디지털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영토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디지털 자산은 혁명인데도 혁명의 원조인 비트코인의 위세에 놀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스스로를 혁명이라 부르면 야단 맞는 홍길동 신세가 됐나 봅니다. 잭 도시가 웹3를 비판한 것이 취지는 옳다해도 좀 심했지 않았냐는 생각도 듭니다.
새해에는 규제 당국이 칼을 빼들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의 흐름은 바꾸지 못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더 확대하고 인간의 존엄을 더 존중해 온게 굴곡은 있지만 인류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온 세상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혁명과, 기존 사회의 효율성을 더 높이는 혁신과, 더불어 살며 인간의 존엄성을 키워가는 공동체의 규제가 접점을 찾을 것입니다.
함께 살려면 공동체도 필요하고 운영을 위한 세금도 필요하고 공동체의 단결을 위한 많은 일들이 필요합니다. 혁명과 혁신이 일부에만 유리하다면 인간(호모사피엔스)만의 특징인 공감을 통한 거대 공동체의 형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규제가 혁명과 혁신을 막지 못한다는 얘기이고, 혁명과 혁신이 혼자 나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투자가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투자자 여러분,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과 혁신에 힘을 보태는 후원자입니다.
투기꾼, 철 없는 한탕주의자가 아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개척자 입니다.
다가오는 경제위기의 쓰나미에서 당신과 가족을 지키는 안전의 수호자입니다.
투자자들이 미래의 희망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투자하면 됩니다.
블록미디어가 여러분의 길에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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