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글로벌 자산가격 폭락…경기침체의 악순환 우려”
“유동성 파티의 끝물…가계대출·부동산 거품 붕괴 대비해야”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3일 “회색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는, 그야말로 ‘멀리 있던 회색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회색 코뿔소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을 뜻하는 표현으로,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처음 사용했다.
고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통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해 12월 들어 테이퍼링을 가속화하면서 이제는 금리인상과 양적 긴축까지 논의하고 있고,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19 상황과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같은 이슈들도 가시화되면서 새해 우리 경제·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위원장은 올해도 금융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비은행)금융권발 리스크 관리집중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가장 먼저 가계부채 관리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장은 “지난해엔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총량 규제에 주력했다면, 올해는 가계부채 시스템 관리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차주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확대 등 시스템에 기반한 가계부채 관리를 기본틀로 하면서 총량규제는 실물경제, 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계부채 관리시 서민·취약계층 자금조달에 애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꼭 필요한 실수요 등에 대해서는 관련 규제를 최대한 유연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긴축전환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차주들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문제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그는 “코로나19에 따른 영업환경 악화로 지난 2년간 개인사업자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많은 사업자들이 가계대출도 함께 받아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영업타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통화긴축에 따른 금리상승까지 더해지면 이들의 대출 부담과 부실화가 우리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차주들이 받은 가계대출은 304조원으로, 이들의 총 대출액은 888조원에 이른다.
그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코로나19 위기가 종료될 때까지 필요한 금융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취약차주발 리스크가 금융시장으로 증폭·전이되지 않도록 다양하고 효과적인 금융지원 방식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금융권 리스크 관리 강화 필요성도 역설했다. 고 위원장은 “금융권은 현재의 경제·금융여건을 냉철히 평가하고, 불확실성 확대와 금융불균형 누적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우리 금융권의 손실흡수능력 제고 노력이 주요국에 비해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균형감을 잃고 낙관적 미래전망에 편향되거나, 평년과 다른 상황임에도 표면적인 지표에 의존해 잠재리스크를 과소평가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며 “글로벌 긴축전환, 코로나19 금융지원조치 종료 등 예상되는 충격을 충분히 감안해 대손충당금 등 손실흡수능력을 훼손하지 않고 위기대응여력을 차질없이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고 위원장은 향후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미스매치와 레버리지 거래가 큰 리스크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그간 이어진 저금리와 풍부한 시중 유동성은 비은행 금융기관이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장기·저유동 자산으로 운용하고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을 높이는 영업을 가능케 해왔다”며 “하지만 앞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게 되면 이러한 미스매치와 레버리지 거래는 큰 리스크 요인이 되고, 단기자금시장에서 업권간 연계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러한 업권별 리스크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전이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금융위는 금감원과 함께 비은행권의 위기대응 여력과 리스크 전이 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고 위원장은 “요즘 많은 이들이 ‘금융위원장으로서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아젠다가 무엇이냐’ 묻는데 그때마다 ‘지난해와 똑같이 금융안정’이라고 대답한다”며 “금융안정이라는 일관된 목표 하에 그 외연을 가계부채와 함께 자영업자와 금융권발 리스크 관리까지 넓혀, 앞으로의 상황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최소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시장 전문가들은 글로벌 통화긴축 본격화, 중국의 경기둔화, 미중 갈등 및 공급망 문제 등 다양한 리스크 요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올해는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는 해로, 새 균형 모색과정에서 그동안 잠재됐던 리스크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초대형 성장주, 저신용채권, 비유동 자산(부동산 등), 규제 사각지대(가상자산) 등 레버리지 비율이 높고 유동성이 급등한 분야를 중심으로 정책 정상화에 따른 리스크 파급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미 연준의 금리인상 시사 등에도 미국채 수익률은 적정 수준보다 낮아 실질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며 “장기적으로 실질 GDP 성장률과 유사하게 유지되는 실질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경제주체들이 경기위축을 예상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특히 위험자산인 주식에 대한 투자비중이 높은 미국의 경우자산가격의 급락으로 인한 경기침체 악순환 가능성도 높다”며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4월부터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로 지속되고 있어 향후 침체로 인한 시장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호 칼럼니스트도 “올해는 포스트 코로나 원년으로, 유동성 파티의 끝물”이라며 “이례적 금융완화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로 전세계적 통화긴축 및 금리인상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리인상시 우려되는 가계부채 부실과 부동산 거품 붕괴에 사전적으로 충분히 대비해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며 “연착륙에 실패해 가계대출 부실이 현실화되고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경우,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의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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