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틴은 전략가 아닌 책략가”
# “전면전 안 해…요구 관철 위한 협상 수단 확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양상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우크라이나 긴장사태 완화를 위해 러시아와 연쇄 회담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4월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는 러시아는 연쇄 회담이 결렬되자 지난 18일(현지시간) 동맹인 벨라루스로 군을 파견했다. 러 국방부는 오는 2월 10~20일에 있을 연합군사훈련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제 러시아 군대에 포위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위로 벨라루스, 동부 접경에 러시아, 남부 접경에는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가 있다. 크림반도에는 러시아 정예부대 10만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러시아가 이달 중순이나 2월 중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오는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미-러 외교장관급 회담이 담판을 짓는 날로 여겨지는 데,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동구에 피바람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6일(현지시간) 도네츠크 인근 국경에 배치된 군 부대를 방문하고 있다. 2021.12.07 kckim100@newspim.com |
◆ 긴장수위 높이는 정황들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이 정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심산인 것일까.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지난 18일 CNN방송에 제공한 첩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집결한 러시아 육군은 10만6000여명. 해군과 공군까지 합하면 당장 위협이 될 군사 규모는 12만7000여명이다.
러시아 군은 지난달부터 접경 지역에 영구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탄약고와 야전병원, 보안 기관이 들어선 점은 러시아가 공격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고 우크라이나 군 정보 당국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는 러시아 특수공작원을 포함한 약 3000명과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는 친(親)러 민병대 3만5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의 정보 공작도 더욱 활발해졌는데, 우크라 접경 지역에 설치된 라디오와 위성 수송 단위는 지난해보다 3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인근에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Iskander) 발사대 36개를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를 “국가 필수 기반시설이나 물체를 조준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있다.
지난 15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우크라이나의 정부 기관과 IT기업, 비영리 단체 등에서 악성코드(malware)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전날 우크라이나 주요 정부 부처 사이트가 다운됐는데 아직 러시아 소행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며, 침공 전 우크라의 행정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공작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에 외교관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영사관 2곳의 외교관들은 최근 떠날 채비를 할 것을 통보받았다. 이를 전쟁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 “협상서 우위 점하려는 푸틴의 노림수”
돌아가는 상황만 놓고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실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는 불분명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Sputnik/Mikhail Metzel/Kremlin via REUTERS 2022.01.18 [사진=로이터 뉴스핌] |
러시아 군사 약 7만7000명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된 것은 맞지만 이는 한 달 전 미 국방부가 예측한 총 군사 규모인 17만5000명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에 총격을 가하려면 15만~20만명의 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 당국에서는 러시아가 군사장비 이동이 용이한 시기까지 군사 이동을 연기한 것이 아니냐란 견해가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외교적 협상 속도에 맞춰 군사 이동도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DC 정가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그랜드 전략가(grand strategist·옛 소련의 세계제패 전략가)가 아닌 책략가(tactician)”로 평가한다. 자국 은행과 기업이 제재받을 위협이 닥친 상황이나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흡수해 동진하는 등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능한 인물이란 것이다.
NYT는 “우크라이나가 절대 나토에 가입해서는 안 되고, 핵무기나 중화력의 군사무기가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 등에 배치돼선 안 된다는 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다는 일련의 신호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림수일 수 있으며, 본격 협상 전 레버리지 확보를 위한 수단이라는 해석이다.
미 지정학 컨설팅 업체 스트라트포(Stratfor)에서 연구원으로 10년 이상을 지낸 유진 차우소프스키도 “러시아가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를 쳐서 달성해야할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약화, 보복 정책(한 국가가 영토를 되찾는 정책)으로 인한 국내 여론 지지 상승 효과, 서방 국가에 보내는 메시지 등이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차우소프스키는 근본적인 계기나 명분 없이 푸틴 대통령이 섣불리 군사공격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나토로부터 군사적 보복을 받을 수 있고, 우크라이나를 오히려 나토와 엮어주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러시아가 전통적인 군사 동원 방식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러시아는 역사적으로도 공공연한 군사적 행위 대신 다른 수단들로 침략해왔다”며 ‘그레이 존'(gray zone·불분명한 영역)을 언급했다. 우크라 동부 친러 민병대를 동원하는 등 ‘트로이 목마’ 작전을 쓸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에 협력한 우크라 의원 등 고위직 4명을 제재했다. 이들은 러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의 지시를 받고 허위정보 유포에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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