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한국 경제에 ‘회색 코뿔소’가 드리우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예상보다 빠른 긴축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반면 중국은 급격한 경기 둔화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1800조를 돌파했고, 민간부채 위험도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세계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국채 가격이 하락하는 등 자산가격 버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돈풀기’에 나서면서 발생한 버블을 거둬들이면서, 주식 뿐 아니라 부동산 등 자산 시장 위축도 예상되고 있다. ‘회색 코뿔소’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회색코뿔소’는 충분히 예상 가능 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뜻한다. 위험의 징조가 지속해서 나타나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간과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미셸 부커 전 세계정책연구소 소장이 지난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통화긴축 기조가 가속화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속도를 낼 경우 신흥국을 중심으로한 긴축발작이 세계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호주, 영국 등도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25~26일(현지시간) 열린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범위를 동결(0.00~0.25%)하고, 금리인상은 테이퍼링이 종료되는 3월에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3월 금리인상을 고려 중이며 노동시장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꽤 있다”고 말해 3월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또 한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해진 게 없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올해 연준이 최소 4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또 연말까지 매회 금리를 올려 6~7회 인상하거나 한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3월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연간 최대 7차례 인상 전망도 나온다. 올해 남은 FOMC 회의는 3월, 5월, 6월, 7월, 9월, 11월, 12월로 모두 7차례 열린다. 매 회의마다 0.25%포인트 금리를 인상한다고 가정하면 미국 기준금리는 상단 기준 연 2%에 이르게 된다.
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지난 14일 한은은 기준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추가 기준금리 인상도 예고했다. 미 금리인상으로 세계경제 성장의 모멘텀이 약화되고 자산가격 변동이 지속되는 등 상당기간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중금리 상승은 가계부채 이자 증가로 이어져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는 있지만 이미 1800조를 넘어 섰고, 조만간 1900조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기업 부채의 합) 비율은 219.9%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9.4%포인트 상승했다. 1975년 통계편제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다. 부채 위험도도 역대 최로치를 경신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2분기 신용갭은 전 분기(18.3%) 상승한 18.4%포인트로 ‘경보’ 단계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2년 이후 최고치다. 신용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10%포인트를 넘으면 경보 단계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분기(13.8%) 10년만에 처음으로 경보 단계에 진입했다.
여기에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도 3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영업자 부채는 887조5000억원이다. 코로나 위기 전인 2019년 말보다 29.6% 늘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자영업자 만기 연장 금액은 115조원, 원금 유예 12조1000억원, 이자 유예 5조원이다. 3월 이후 대출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가능성도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부동산 위축, 기업규제, 미중갈등 등 대내외 리스크로 올해 5%대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5.6%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씨티은행과 JP모건은 4.7%로 내다봤고, 골드만삭스와 노무라증권은 이보다 더 낮은 4.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가 둔화될 경우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재영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미국의 긴축에 따른 신흥국의 긴축발작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통화긴축이 가속화 되고 있고, 중국정부도 성장이 둔화되는 등 리스크 요인으로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그동안 잠재됐던 리스크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고, 초대형 성장주, 부동산, 가상자산 등 유동성이 급등한 분야를 중심으로 정책 정상화에 따른 리스크 파급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4~2006년처럼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단기간에 공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국내 외화자금 시장의 외화부족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중국의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하는 충격으로 작용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의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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