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와 코인투자자 차별하는 기업들
[블록미디어 프로메타 연구소 최창환 소장] 전 세계적으로 게임과 암호화폐의 결합상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돈을 내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면 돈(암호화폐)을 준다는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P2E)’ 개념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게임사들도 일제히 P2E에 뛰어들었다. 위메이드와 카카오게임즈의 경우 관련 코인도 발행했다. 게임사 주가도 오르고, 코인가격도 급등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게임사들이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특성을 무시하고, 주주 우선 주의를 택하면서 코인 투자자들이 뿔이 났다. 암호화폐 기술,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 철학인 탈중앙화와 커뮤니티의 힘을 무시한 결과다.
위메이드에 뿔난 코인투자자들
위메이드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위메이드 주식에 유리하지만, 위메이드가 만든 코인 ‘위믹스’에는 말도 안 되고 불리한 일을 한 것이다.
지난달 위메이드는 보유 중인 위믹스 코인을 대량으로 내다 팔았다. 코인 발행 당시부터 “코인을 팔아 커뮤니티 확장 등 좋은 일에 쓰겠다”고 말한 것이 명분이다. 코인 매도 대금은 ‘피아트머니'(현금)이고, 그 돈은 위메이드로 들어갔다. 위메이드는 이 자금으로 선데이토즈 인수 등 M&A와 사업 확장에 썼다.
정리하면 이렇다. 코인 매도 → 위메이드로 현금 유입 → 위메이드, 선데이토즈 등 인수 대금으로 사용 → 위메이드 기업 가치 상승.
얼핏 보면 매우 선순환적 흐름으로 보인다. 자금 흐름상, 위메이드 주주는 확실히 이득이다.
위메이드가 만약 선데이토즈 인수를 위해 유상증자를 하거나, 차입을 했다면 주주들이 반발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메이드는 영리하게 보유 코인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했다. 코인 팔아 원하던 M&A를 성사시켜 기업가치를 올렸으니, 주주들로선 좋을 일이다..
그러나 위믹스 코인 보유자들은 얘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코인 매물 압력이 커졌다. 그러니 코인이 ‘위믹스 커뮤니티’에 잘 쓰이기만 바랄 뿐이다.
확실히 리스크 관점에서는 위메이드 주식이 훨씬 유리하다.
만약 선데이토즈 인수 등이 성공해 위메이드가 펼칠 사업이 커지면 당연히 주가는 상승한다. 물론 위믹스 코인도 오를 것이다.
만약 코인 팔아 뛰어든 위메이드 비즈니스가 어떤 이유로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보자. 주주들로부터 신규자금을 조달(증자)했거나 차입으로 투자했다면, 실패할 경우 주주들 손해가 크겠지만 코인 매각으로 확보한 피아트머니를 쓴 것이니 큰 타격은 없다.
위믹스 코인은 다르다. 갖고 있던 코인을 팔아 투자한 사업이 망가졌으니 코인 홀더는 손해일 수밖에 없다.
시장도 이걸 안다. 위메이드 주가와 위믹스 코인은 고점 대비 낙폭이 다르다. 위메이드 주식이 39% 떨어질 때, 위믹스 코인은 64% 떨어졌다.
● 위메이드는 코인 매각을 옵션으로 썼다. 주주들은 손해날 게 없다
● 위믹스 코인 홀더는 리스크를 온전히 부담했다
● 비즈니스 확장이 성공하면 주식도 좋고 코인도 좋다
● 그러나 비즈니스 확장이 실패하면 주주는 본전, 코인은 폭망이다
경영진 눈에 주주랑 코인투자자는 다르다
위메이드 사태의 본질은 코인을 팔아,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역의 흐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위메이드가 유상증자, 차입 등으로 현금을 확보한 후, 그 자금을 위믹스로 전환할 수 있을까? 위믹스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위믹스 코인 매입 소각 등을 할 의향이 있을까? 아마도 못 할 것이다. 주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위메이드는 코인 매각 자체를 놓고 코인 투자자에게 허락 받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주는 무섭지만, 코인 투자자는 그저 이해의 대상일 뿐이다.
위메이드-위믹스 사태는 상장사와 관련된 모든 코인에 적용된다. 카카오 계열주, SK스퀘어, 다날, 컴투스 등 자신 혹은 자회사가 코인을 발행했거나, 앞으로 발행하려는 상장자들이 다 그렇다.
‘코인→주식’의 현금 흐름만 가능하고, 역으로 ‘주식→코인’의 흐름은 불가능한 상황, 주주는 무섭고, 코인 홀더는 만만한 상황에서는 주식을 선택하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위메이드-위믹스 사태와 똑같은 일이 곧바로 일어났다. 이번에는 카카오게임즈다. 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코인 투자자에게는 불리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했다.
카카오 보라2.0도…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8일 ‘보라2.0’ 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보라는 카카오게임즈와 카카오 계열사들이 P2E 시장에서 활용할 암호화폐 코인 이름이다. 보라를 중심으로 카카오게임즈, 카카오엔터 등이 뭉쳐 본격적으로 P2E 시장과 메타버스를 공략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앞으로 보라 코인 발행이 계속해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인 발행량이 늘어난다고 하니 코인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비전 발표에 대해 코인 투자자들이 불만인 점은 사전에 카카오 측이 코인 투자자들에게 코인 발행량 증가에 대해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메이드와 마찬가지로 그저 “커뮤니티에 잘 쓰겠다”는 말뿐이다.
주식과 달리 코인은 추가 발행 결정에서 투자자들은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커뮤니티를 위한다면서 커뮤니티와 상의하지 않는다.
위메이드-위믹스 때 적용됐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보자.
카카오 주주들을 설득해 유상증자한 돈으로 보라 코인을 매입해 소각할 자신이 있나? 보라 코인을 더 발행해서 그 덕을 카카오게임즈와 계열사 주주들이 누리는 것은 괜찮고, 정반대의 현금 흐름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아닌가? 코인 투자자는 여기서도 호구일 뿐이다.
시장 반응을 보면 답이 나온다. 카카오게임즈는 보라2.0 비전 발표 당일 주식시장에서 전날보다 5.87% 상승했다. 반면 보라 코인은 장중 고점에서 26% 급락했다. 보라2.0이 발표되는 바로 그 시간에 코인의 주인들은 폭탄을 맞았다.
눈 가리고 아웅, 거버넌스 카운슬
암호화폐 네트워크, 커뮤니티에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장치가 있다. 그걸 ‘거버넌스 카운슬'(Governance Council)이라고 한다. 이게 탈중앙화의 핵심 중 하나다.주식으로 치면 주주총회, 이사회 같은 역할이다.
보라2.0은 거버넌스 카운슬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보라 코인이 작동하는 암호화폐 네트워크인 클레이튼 자체가 소수 기업들이 지배하는 반쪽짜리 블록체인이라는 점이다.
암호화폐 네트워크 클레이튼을 작동시키는 노드(node)는 30여 개에 불과하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표적인 블록체인은 노드가 전 세계에 몇 만 개에 달한다.
보라2.0에 따르면 결국은 카카오 계열사들이 다 모여 중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럼 뭐 하러 거버넌스 카운슬을 만드나.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서 결정하면 될 일을!’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주식은 사고, 코인은 팔라가 정답?
주식과 코인을 다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해당 주식을 사고, 코인은 팔라.”
암호화폐 생태계, 탈중앙화된 커뮤니티는 중앙화된 주식회사, 주주 자본주의와 성격이 다르다.
위메이드와 카카오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P2E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코인 투자자들이다. 이들을 무시하고 주주우선주의 정책을 한다면 그 코인을 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보라 코인 생태계의 진짜 주인이 카카오 계열사 주주라면 코인을 사야 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위메이드-위믹스 논란 이후 주가 차트다. 위메이드(청색) 주가는 그 사이 5% 넘게 올랐다. 위믹스(주황) 코인은 2% 넘게 하락했다. 주식은 사고, 코인은 파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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