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전세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올해 말 1.5~1.75%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가를 낮추는 과정에서 정책금리가 인상될 경우 성장률이 추락할 수 있는 등 자칫 살아나려는 경기에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의 금리 상승 추세로 볼 때 기준금리가 한두차례 더 인상된다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7%대에 진입할 것이 확실시된다.
12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우려와 주요국 긴축기조 강화 등으로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해 연말까지 1~2차례 추가 인상해 1.5~1.75%까지 인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이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물가를 잡기는 커녕 성장만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제기구 등은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IMF)은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종전 3.3%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우리 정부(3.1%) 보다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은행 전망치와 같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주요 전망 기관 중 가장 낮은 2.1%를 제시했다.
지금과 같은 높은 부채 국면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고부채 시기에 금리를 인상하면 저부채 시기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2배 가가이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DI는 1999년 2분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실질국내총생산(GDP), 소비자물가, 기준금리, 민간부채 등을 활용해 높은 부채 상황과 낮은 부채 상황에서 금리인상이 경기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고부채 상황에서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 경제성장률이 세 분기에 걸쳐 최대 0.15%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저부채 상황에서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세 분기에 걸쳐 성장률이 0.08%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가계·기업 부채는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 잔액은 전년 동기 대비 9.7% 증가한 1844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부채도 1497조80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4% 늘었다. 이 둘을 합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219.9%로 1975년 통계편제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말 잔액 기준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6.1%로 2014년 4월(76.2%) 이후 7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더 올라가면 코픽스, CD(양도성예금증서), 은행채 등 지표금리 상승으로 대출금리가 뛰어 가계의 소비 여력이 크게 낮아지고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한 우려는 한은 내부에서도 지적됐다.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성향의 한 금통위원은 “민간소비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현재의 물가상승은 수요측면보다 수입물가 상승에 의한 공급측 압력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년간 연평균 2%대에 불과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물가 상황이 총수요를 둔화시키면서까지 시급히 대응할 정도인지 통화정책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소비에 대해서는 “높아진 이자부담과 물가부담으로 가계의 구매력이 저하되는 데다, 지난해와 달리 자산가격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에 따른 소비의 플러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소비여건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금리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코로나19 위기의 대응과정에서 경제 전체의 레버리지가 늘어난 상황에서 속도감 있는 기준금리의 정상화는 취약 가계 및 기업의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금리인상 기조에 대비한 부채구조의 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인상 속도 조절 필요성이 내세웠다.
반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근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 오르면서 미 연준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월 미 소비자물가(CPI)는 전년동기대비 7.5% 급등해 1982년 2월 이후 근 40년 만에 최대폭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4~5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한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할 가능성도 관측된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 두 나라 기준금리 격차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 한은으로서는 더 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14일 금통위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미 연준의 긴축 강도가 세진다면 우리의 통화정책 방향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물가 상승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는 전년동월 대비 3.6% 상승했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째 3%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는 2.5% 올라 2011년(4.0%)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물가는 지난해 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가 지난해보다 높은 2% 중후반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에서 물가 상승률을 2%로 전망했다가 12월 물가간담회에서는 다시 2%대로 고쳤다. 불과 두 달도 안돼 전망치를 두 차례나 수정한 것이다. KDI가 국내 경제 전문가 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올해 물가가 전년대비 2.7%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유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서
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3일 90.27달러로 2014년 10월 이후 7년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90달러를 넘었다. 주요 산유국의 더딘 증산, 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국제유가는 조만간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금리인상이 자칫 살아나는 경기를 둔화시킬 수 있다며 물가안정과 실물경기 회복 모두를 고려한 거시경제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요 요인 인플레이션은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인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면 되지만 최근과 같은 비용요인 인플레이션은 물가안정과 실물경기 침체 방지라는 두 가지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원칙적으로는 실물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재 침체되는지 주시하고 경제 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만 통화정책인 금리인상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심화 가능성에 대응한 거시적관점의 통화정책 보다는 공공 서비스 요금 인상 유예, 가격 급등 수입 농산품 및 공산품에 대한 관세 인하 등을 통해 서민 체감 물가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며 “물류, 유통 비용 등이 과도하게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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