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문가들 대부분 푸틴의 서방 압박 속임수설 믿지만
팬데믹 기간중 고립돼 지내며 편집증 심해진 푸틴 변화 외면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러시아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가속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동이 속임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푸틴이 팬데믹 기간중 크게 변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전문가 대부분은 푸틴 대통령이 합리적인 사람이며 따라서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군사 배치를 속임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는 푸틴이 팬데믹 기간중 보다 편집증적으로 변하고 불만이 커져서 무분별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달 열린 유럽 지도자들과 회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6m 길이의 테이블 양끝에 앉아서 회담하는 모습은 푸틴이 서방과 멀어졌음을 상징한다.
[모스크바=AP/뉴시스]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4m짜리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2.02.08. |
2년 가까이 푸틴은 서방 지도자들과 달리 코로나 감염 위험이 없는 대통령궁에 머물며 중요 회담을 화상으로 진행하는 모습이 러시아 국영 TV를 통해 방송돼 왔다. 푸틴은 드물게 장관들을 불러 들인 경우에도 멀찌감치 떨어져 대화하는 모습이다.
푸틴의 중대 결단이 임박하자 모스크바의 분석가들이 푸틴의 심리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에카테리나 슐만 전 대통령인권위원 겸 정치학자는 푸틴이 최근 대중앞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나 있고 호기심을 잃었으며 새로운 것을 파악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대중들에게는 그가 2020년 봄부터 사실상 고립돼 있는 모습만 보여졌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푸틴이 지금까지 취한 어떤 조치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2014년 러시아는 교활한 술책으로 총 한 방 쏘지 않고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반군을 내세운 대리전쟁으로 분쟁에 직접 발을 담그지 않고 있다.
아나스타시아 리하체바 모스크바고등경제대 세계경제 및 국제문제대학장은 “전면전쟁을 일으키는 건 푸틴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전쟁을 벌여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원한다고 말해온 동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철수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NATO 동맹국들이 “더 단합할 것”이며 러시아 서쪽 국경지대에 더 강력한 신무기들을 배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항상 신중한 정치인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해왔다. 우크라이나 합병을 주장해온 민족주의적 선동가 진행자 프라임타임 토크쇼와 일부 의원들을 배척해왔다.
자신이 러시아의 안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서방의 경제제재로 경제가 역풍을 맞을 것이며 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면 시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러시아의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 책임자인 데니스 볼코프는 현재로선 러시아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서방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대통령궁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미국의 경고에 대해 “서방이 압박하면서 긴장을 높이는” 당사자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푸틴이 2008년 조지아 공격 때처럼 단기에 일부 지역에서만 작전을 전개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반면 “장기적이고 희생이 큰 전쟁이라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며 안정은 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많기 때문에 러시아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근본적 안보 이익을 위해 서방을 몰아내겠다는 푸틴의 오랜 구상을 구현하는 마지막 단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1990년대 서방이 약해진 러시아를 압박해 새 유럽질서를 강요했으며 러시아에 대한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역사적 경험을 무시했다는 것이 푸틴의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다시 강해진 지금 러시아 대통령이라면 지도를 새로 그리려 노력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자문인 저명 외교정책 전문가 표도르 루키아노프는 푸틴의 현재 목표는 “냉전의 결과를 부분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푸틴이 전면 침공 직전에 멈출 것이며 대신 푸틴이 정말로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도록 하는 “특수, 비대칭 하이브리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속임수가 통하려면 상대를 믿게 해야 한다”며 미국이 러시아가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200% 놀아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분석가들은 이런 생각에 따라 미 당국자들이 푸틴이 사악한 천재라는 과장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실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푸틴이 서방과 벌인 무기통제 및 NATO 확장 억제를 위한 협상이 실패했기 때문에 푸틴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판돈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트레닌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책임자는 “푸틴은 자신을 악마로 묘사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잘 활용해왔다”며 푸틴이 곧 공포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걱정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협을 통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전문가들은 오래전 오판했었다.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 군사행동을 예상한 러시아 분석가들은 거의 없었다.
푸틴이 속임수를 수고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푸틴이 이미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같은 일들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알렉세이 나발리와 동료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사실은 푸틴이 국내 정치범들을 불만을 통제하기 위한 출구로 삼고 있다는 기존의 견해들을 뒤집었다.
마이클 코프먼 CNA 러시아 전문가는 “푸틴이 지난해 루비콘강을 거의 건넜다”며 “현재 진행중인 드라마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지난 2년 동안 푸틴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걸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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