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4년 만에 배럴당 140달러 유력
#”러 에너지 제재땐 배럴당 180달러 갈수도”
#러-우크라 리스크, 에너지 가격에 이미 반영
#미, 이란 핵합의 복원 가능성에 주목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더 거세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하는 등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를 제재 범위에 포함할 경우 국제유가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0달러 수준을 넘어 150~18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는 이미 2008년 수준까지 올라온 데다, 전망치를 내놓기 무섭게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전망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 결렬 소식에 장중 배럴당 116.57달러까지 치솟았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8년 9월 22일(배럴당 130.0달러)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이란 핵 협합의 복원 기대감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면서 전장보다 2.65% 하락한 배럴당 107.67달러로 마감했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4월물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2.19% 하락한 110.46달러에 마감했다. 장중 배럴당 119.84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8년 8월 22일(배럴당 120.91달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11월 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WTI가 배럴당 60달러 대까지 급락하는 등 큰 폭 하락했으나 올 들어 다시 가파른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유가는 이미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120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2008년 4~8월과 2011년 2 월~2014년 8월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주요 전망 기관들은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0달러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JP모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 고조로 공급충격이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가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최고 18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은 제재가 확산되면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되는 러시아산 원유가 하루 430만 배럴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잇따라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브렌트유가 올 2분기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 봤으나 이 수치를 다시 배럴당 110달러로 높였다. 또 최악의 경우엔 배럴당 125달러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원유 공급 제약이 심화될 경우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95달러에서 115달러로 높였다. 전망치가 유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 전망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국책 연구기관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지속될 경우 유가가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서방의 제재 대상에 러시아산 원유가 포함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 원유 재고 감소와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공급차질 우려 때문이다.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 등 주요 산유국의 생산 목표치 미달로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면서 원유 재고가 감소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1월 석유 재고는 26억8000만 배럴로 이전 5개년 평균을 9% 밑돌고 있으며 2014년 중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 연합체인 OPEC 플러스는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4월 증산 규모를 기존의 일일 40만 배럴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미국의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가능성과 이에 따른 이란 원유 수출 허용 여부에 따라 국제유가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JCPOA는 이란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5개국(P+5)이 지난 2015년 이란의 핵 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 해제를 약속하며 맺은 합의다.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핵합의 복원을 위한 7차 협상을 벌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31개 회원국도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에 60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방출량이 러시아산 원유 공급량의 일주일치 밖에 되지 않아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한 데 이어 러시아산 에너지에도 제재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로 원유 수급이 제한되면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아 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 전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직접 제재를 가하지 않더라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이 커지고 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아직 가하지 않았고, 실제 제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미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줄이고 있어 현재 유가에 러시아 공급 차질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러시아산 에너지까지 전면 제재를 가한다면 공급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심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OPEC 플러스가 기존의 증산 속도를 유지하기로 했고, 최근 IEA 회원국이 비축유를 방출했지만 이는 러시아산 에너지 산유량 기준으로 일주일치에 불과해 고유가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슈가 진행중이고 이란 핵합의 복귀를 위해 미국과 이란간 협상도 진행 중이라 유가 변동성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WTI와 브렌트유 모두 배럴당 11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간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는데, 미국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해 실질적 제재를 가할 경우 120달러 보다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있어 국제유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 OPEC플러스의 증산기조 유지, 이란 핵 협상 타결 가능성 등은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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