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220원 돌파…1년10개월來 최고
#국제유가 배럴당 130달러 돌파…2008년 수준
#에너지 급등에…무역수지, 적자 전환 가능성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우려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고, 원·달러 환율도 1220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환율과 유가에 시장 참여자들의 공포감도 커지고 있다. 환율 상승에 1970년대 오일쇼크 시기를 넘어서는 최악의 원자재 가격 상승세까지 겹치면서 국내 경제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션’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8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환율 급등, 국제유가 상승 등 원자재 가격발(發) 물가 오름세가 확대된 가운데 경기 회복 지연 우려가 높아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배럴당 90달러대 였던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130달러까지 넘어섰다. 연초만 하더라도 배럴당 100달러 돌파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현실화될 것이란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전장보다 10.24% 급등한 배럴당 130.21달러에 마감했다. 장중 배럴당 130.89달러까지 치솟는 등 2008년 7월 22일(배럴당 133.75달러) 기록한 장중 최고치를 뛰어 넘었다. 같은 날 미국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도 전장보다 9.80% 뛴 배럴당 127.02달에 마감했다. 장중 배럴당 130.33달러까지 급등했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8년 7월 22일(배럴당 132.07달러) 이후 최고치다.
최근 국제유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 원유 재고 감소와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공급 차질 우려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가 러시아산 에너지 수출 금지 제재를 가하게 될 경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의 배럴당 140달러 수준을 뛰어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JP모건 등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 고조로 공급충격이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가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최고 18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유가 외에 다른 원자재 가격도 이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한 주 유럽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103.92% 폭등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도 같은 기간 20.03% 치솟으면서 관련 집계가 시작된 1970년 이후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곡물, 금속 등 33개 주요 원자재 현물지수 역시 지난 한 주 13.02% 뛰어올랐다. 이는 관련 집계가 시작된 1960년 이후 역대 최고 주간 상승률이다.
국제유가 상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 우려 등으로 원·달러 환율도 1220원을 돌파했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14.2원)보다 12.9원 오른 1227.10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8원 오른 1219.0원에 출발해 장중 최고 1228.0원까지 올랐다. 이는 종가 기준 2020년 5월 29일(1238.5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는 2020년 6월 1일(1232.0원) 이후 가장 높다.
가파른 국제유가 상승과 달러 가치 상승은 수입물가 등에 영향을 줘 국내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수입물가지수는 132.27로 전월대비 4.1% 상승했다. 지수 자체로는 2012년 10월(133.69) 이후 9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소비자물가 역시 5개월 연속 3%를 기록하는 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3.2%로 3%대를 넘어선 이후 11월(3.2%), 12월(3.7%), 올해 1월(3.6%), 2월(3.7%)를 기록했다.
반면, 경제지표는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등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있다. 향후 경기 흐름을 미리 보여주는 1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100.1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해 7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간신히 적자에서 벗어난 무역수지도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는 539억1000만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수입도 530억7000만 달러로 집계되면서 8억4000만 달러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과 1월 2개월 연속 적자를 보인 이후 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된 것이지만, 최근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는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원유 의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아 유가 상승이 물가 등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국가들 보다 크다. 국제 유가가 이미 천장을 뚫은 가운데,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원유 도입 단가가 높아져 국내 기업들이 지급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으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10% 오를 경우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0.17%포인트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0.24%포인트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처럼 인플레이션과 급격한 경기 둔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는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미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상당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며 “원유 등 에너지를 중심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고 중간재도 덩달아 오르면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유가 등 에너지 가격 상승은 해외 요인이라 국내에서 컨트롤이 어렵고 그 자체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금융 시장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경제성장률 자체는 어느 정도 나오고 있지만 전년도 낮았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로 인한 것으로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성장률 등 경제지표는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 지속으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면서 저성장 기조 속 물가가 오르는 ‘슬로우플레이션’ 우려도 나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서방 국가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러시아의 맞대응으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출 경기가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상승 압력을 강하게 받으면서 소비 심리를 위축해 내수 시장의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이에 따라 한국 경제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 따른 파급 영향으로 슬로우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반면 과거에 비해 글로벌 경제의 유가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고 수출도 견조해 스태그플레이션이 당장 현실화 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개월 연속 3%대의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고 선행지수 역시 뚜렷한 둔화세를 보이는 등 경기 둔화 리스크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국내는 고유가 상황에 가장 취약한 국가임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상황이 부담스러운 리스크이긴 하지만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경기 호조와 더불어 엔데믹(풍토병) 수요 모멘텀이 국내 수출 경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반도체 등 IT업황의 반등 가능성과 국내 역시 2분기부터 본격화될 엔데믹 국면으로의 전환에 따른 내수 경기 호조는 국내 경기 침체 혹은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국내 경기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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