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내 집 마련’ 지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에서 가계대출 규제가 어느 수준으로 완화될 지 관심이 높다.
28일 금융권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 25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마친 후 “금융위 일반현황과 당면현안에 대한 보고, 당선인의 공약과 연계해 신정부에서 추진해야할 주요 과제 등을 주제로 토의했다”며 “최근 금융시장의 주요 불안요인인 대러시아 제재 및 통화정책 정상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금융상황, 가계부채 동향 등에 대한 대응체계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앞서 윤 당선인은 생애최초 주택구매 가구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을 80%로 인상하고, 생애 첫 주택구매 가구가 아닌 경우 LTV 상한을 지역과 관계없이 70%로 단일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주택 보유자의 경우 보유 주택 수에 따라 LTV 상한을 40%, 30% 등으로 차등화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선 9억원 이하 주택 LTV가 40%, 9억원 초과 주택은 20%가 적용된다. 주택가격이 15억원을 넘어서는 경우엔 담보대출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LTV 규제를 풀어준다더라도, 차주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가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유가증권담보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현재 총대출액이 2억원 이상인 차주들에 DSR 40%가 적용되고 있다. 이는 연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을 갚는데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LTV를 80%까지 높여준다 하더라도 DSR 규제 완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소득이 낮은 이들의 대출 가능 금액은 늘어날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에 DSR 규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대출규제 완화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DSR 규제를 전면 재검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실제 윤 당선인은 지난 25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직접 참석해 “주택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주택 구입을 위한 무리한 대출로 가계부채가 커지고 경제에 큰 부작용을 주기 때문에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가 정책을 세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오는 7월부터 총 대출액 1억원이 넘는 차주들로 확대되는 DSR 규제 시행을 미루거나, 세부 내용을 수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예컨데 현재 2억원 초과 대출에 적용되는 DSR 규제 기준을 5억원 초과 대출로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인수위 측은 “검토된 바 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가계대출 총량규제의 경우 폐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도높은 규제와 금리인상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가계대출 증가세가 감소세를 나타내면서, 증가율을 연 4~5%로 관리하겠다는 총량규제는 현재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은행들도 선제적으로 대출 빗장을 풀고 있다. 앞서 은행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정책에 발맞춰 지난해 10월 전세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 한도를 전셋값 증액분까지로 제한하고,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대출 신청이 가능토록 했다. 1주택자의 비대면 대출도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지난 21일부터 전세 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금액 범위 내’에서 ‘갱신 계약서상 임차보증금의 80% 이내’로 변경한데 이어, 하나·신한·NH농협은행도 지난 25일부터 이러한 제한을 풀었다. KB국민은행은 오는 30일부터 임대차 계약 갱신 시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의 80% 이내로 높이기로 했다.
연소득 이내로 제한했던 신용대출 한도는 이미 규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올렸다. 농협은행도 5000만원이던 일반 신용대출 한도를 지난 1월부터 순차적으로 올려 지난달 2억5000만원까지 확대했다.
은행들은 금리도 속속 낮추고 있다. 신한은행은 25일부터 전세자금 대출 상품의 금리를 0.1%포인트 가량 내렸고, 카카오뱅크도 전날 일반 전월세보증금 대출 상품의 최저금리를 0.20%포인트 인하했다. 우리은행은 연 0.2%포인트의 ‘신규대출 특별 우대금리’를 신설했다.
전세대출과 신용대출 완화에 이어, 조만간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표적으론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금지한 현 규제를 손 볼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가계대출 규제를 급격하게 완화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큰 폭의 완화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18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지나친 완화는 다시 가계부채 급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2022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DSR 2·3단계 도입으로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이 3~4%포인트 정도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1년간 취급된 신규대출 대상으로 차입한도 축소 효과를 적용해 보면, 2단계 규제 적용시 신규취급 가계대출이 9.7% 축소돼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은 3.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3단계 규제 적용시엔 신규취급 가계대출이 13.4% 축소돼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이 4.5%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규제를 급격하게 풀어주면 잠잠해진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세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DSR 규제의 경우 유지 또는 소폭의 조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가계대출 규제를 풀어준다 하더라도 예년만큼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며 “LTV 상향만으로는 규제 완화의 효과를 보기 어려운 만큼, 결국 DSR도 완화하는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한은은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대출이 전분기 대비 23조8000억원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이 가계대출의 금리민감도를 추정하고 차주특성별 금리민감도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가계대출 변동폭은 전기대비 23조8000억원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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