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어지러운 세상에는 영웅도 있고, 간웅도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국제 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정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렸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큽니다. 러시아와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으로 어지럽습니다.
서방 각국은 러시아를 상대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강도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손발을 묶기 위해 달러, 금 등 외환보유자금도 동결했습니다.
러시아 경제와 금융시장은 이대로 무너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러시아가 금융전쟁에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 루블화 반등…전쟁 이전 수준
일단 루블화 가치는 전쟁 발발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습니다. 지난주 루블화는 달러 당 81 루블로 침공 직전 2월 23일 수준대로 올라섰습니다. 전쟁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 돈 루블화는 달러로 10센트도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죠.
러시아 외환 거래량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에 이 환율을 그대로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중앙은행이 자본 통제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러시아 금융전쟁을 수행하는 사령관은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아래 사진)입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2013년부터 러시아 중앙은행을 이끌고 있습니다. 푸틴 내각 최고의 경제 관료 중 한 명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습니다. 2019년 포브스는 나이울리나 총재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3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영국의 금융지 ‘더 뱅커’는 나비울리나를 유럽 최고의 중앙은행장으로 뽑았습니다. 2018년에는 IMF가 연례 강연자로 초청한 바 있습니다.
# 푸틴, 절대적 신뢰 보내
푸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전쟁 중 중앙은행 총재로 다시 선임됐습니다. 일부 서방 언론들은 그녀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만, 나비울리나 총재는 루블화 사수 최전선에 있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7년 대형 민간 은행 3개를 통폐합하고, 500여 개 군소 은행들을 폐쇄하는 등 금융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했습니다.
나비울리나는 ‘정무적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푸틴과 관련 있는 ‘외화 대출’을 묵인했고, 낙하산 인사도 받아들였습니다.
나비울리나의 힘은 사실 러시아 원자재 수출에서 나옵니다. 푸틴 집권 기간 동안 러시아는 64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축적했습니다.
극단적인 긴축정책으로 러시아 국민들이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러시아 정부 금고는 탄탄해졌습니다. 천연가스, 석유 수출 대금을 차곡차곡 쌓은 것이죠.
# 서방 경제 제재에 선제적 대응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금요일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20%에서 17%로 낮췄습니다. 예정에 없던 긴급 임시 회의까지 열어서 금리를 내린 겁니다.
전쟁 발발 초기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습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방어하고, 금융 시스템 자체를 전시 체제로 전환한 것이죠.
서방 각국이 금융 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은 달러 채권 원리금 지급에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비올리나는 기준 금리를 다시 내렸습니다.
일종의 선제 타격입니다. 그만큼 루블화 방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죠.
# 루블화 가치 사수…역공도 취해
서방, 특히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에너지 회사들은 서방으로부터 유로를 받으며 천연자원을 팔고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을 풀어주지 않으면 외채 원리금을 루블화로 상환하겠다고 선언하거나, 가스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는 등 역공도 펼치고 있습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서방이 2차, 3차 제재를 가하기 전에 루블화를 방어할 자신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 시장 평가는?
서방 신용평가회사들은 러시아 채권을 디폴트 직전 등급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러시아 국가 부도는 19세기 볼셰비키 혁명 이후 처음으로 겪는 위기입니다.
루블화와 러시아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요?
알파뱅크의 경제학자 나탈리아 오리오바는 “루블화는 매우 강하다. 인플레 위험 지평을 낮추고 있다”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스베르CIB 인베스트먼트 리서치의 수석 전략가 이고르 파포킨은 “금융 불안정 위험이 더 이상 높아지지 않고, 떨어지고 있다”며 “금융 상황이 현재와 같이 전개 된다면 러시아 기준 금리는 연말까지 10%대로 다시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은 중앙은행의 자본 통제 하에 있습니다. 현재의 루블화 강세를 시장의 평가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러시아 석탄에 대해 금수 조치를 내리고, 유럽도 추가로 경제 제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 ‘나비울리나 사령관’도 내상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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