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최근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처음으로 1250원을 돌파하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외환당국 간 환율 방어를 놓고 온도 차이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율이 전날 1250원 턱 밑까지 오르자 기획재정부는 구두개입에 나선 반면 한국은행 수장은 “원화 절하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하는 등 다소 상반된 입장으로 읽힐 수 있는 메시지를 내 놓으면서다. 같은 외환 당국인데, 양측의 메시지가 완전히 다르게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1250원 수준의 환율을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 외환당국 구두개입.. “예의 주시”
26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전날 오전 원·달러 환율이 1250원 턱 밑까지 추격하자 외환당국은 한 달여 만에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25일 “정부는 최근 환율 움직임은 물론 주요 수급주체별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공식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7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올해 들어 두번째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이날 장중 1250.1원까지 오르면서 전 거래일(1245.4원) 기록한 장중 연중 최고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20년 3월 24일(1265.00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2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외환시장과 관련해 “원·달러 환율이 1230원을 넘었는데, 이제까지 지켜봐 왔던 환율 수준에서는 지금이 거의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도 환율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관찰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시장 안정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 홍남기 부총리도 발언
외환당국 수장이 현재 환율의 레벨에 대해 평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홍 부총리의 발언이 공개된 후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환율이 1230원대에서 1220원대로 급락했다.
이후 환율은 다시 홍 부총리가 고점으로 평가했던 1230원선을 훌쩍 넘어 1250원까지 올라갔다. 이에 외환당국도 공식 구두개입을 내놨다.
그런데, 공식 환율 구두개입이 있었던 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출입기자들과의 차담회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원화 절하폭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서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엔화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커지면서 환율 절하폭이 큰 편이지만 아직까지 원화는 달러인덱스 상승폭과 비교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며 “달러 강세로 인해 다른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많이 절하가 됐다고 보지만 원화의 경우 다른 이머징 마켓(신흥마켓)이나 유로화나 다른 기타 화폐에 비해서 크게 절하가 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 이창용 한은 총재 “원화 절하폭 다른 나라 비해 크지 않다” …외환당국과 엇박자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환율이 2년 1개월 만에 장중 1250원을 돌파한 가운데 나왔다.
엔화 등 기타 통화 대비 원화의 절하폭이 크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지만 같은 날 외환당국이 서로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내 놓으면서 시장에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1250원의 환율 레벨을 용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총재가 예로 든 것 처럼 달러 강세에 비해 원화가 덜 약세를 보인 것은 맞지만, 1250원의 레벨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지난해 연말 95.593에서 25일(현지시간) 101.769로 6.4% 올랐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188.8원에서 25일 1249.9원으로 올 들어 5.1% 상승했다.
달러 강세에 비해서 원하 절하폭은 낮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환율 방어 역할을 하고 있는 뉴질랜드(3.3%)나 캐나다(0.6%)에 비해서는 상승폭이 지나치게 크다.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이 총재의 발언이 공개된 이후 전날 장 마감 이후 선물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55원까지 올랐다.
# “쏠림시 속도 제어…기존 입장 바뀐 게 없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250원 구간에서 등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기타 화폐에 비해라는 전제는 달았지만 원화가 크게 절하가 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해 시장에서는 환율이 1250원을 넘어도 이를 용인을 하겠다는 식으로 받아 들였다”며 “전날 오후 이 총재의 발언이 공개된 후 매수자들의 불안 심리가 해소되면서 선물시장에서 환율이 1255원까지 뛰어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총재가 그러나 쏠림 현상이 있을 때는 속도도절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방향성을 꺾는 발언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발언은 최근 환율이 많이 올라갔는데 과거에 비해서는 원화 하락폭이 덜했다는 취지인 것 같다”며 “최근 몇 일 사이를 염두해 두고 한 발언이기 보다는 연말에 비해 원화 하락폭이 어느정도 되는지 추세를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반영한 것이라면 선물 시장 반응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 당국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많이 올라왔는데 원화만 그런 게 아니고 기타 통화도 마찬가지라는 차원에서 원론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이 더 올라가도 된다는 의미로 얘기한 것은 아니고, 쏠림시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은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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