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사태가 남긴 교훈
[블록미디어 프로메타 연구소 최창화 소장]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루나(Luna)-테라(Terra, UST) 사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탈중앙화를 철학으로 하는 블록체인 기술, 새로운 금융을 지향하는 디파이, 그리고 혁신을 선도하는 리더십. 테라 사태를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돌아보자.
#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성공할 수 없었나?
테라는 지구라는 뜻이다. 루나는 달이다. 테라 프로젝트는 두 암호화폐가 마치 지구와 달처럼 공전하면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달(루나)이 몰락하면서 지구(테라)는 파국을 맞았다.
한성대학교 조재우 교수는 테라가 실패를 잉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가 1달러에 연동되는 암호화폐다. 이러한 고정물, 즉 페그(peg)가 순간적으로 깨지면 자동으로 1달러를 보장하는 장치들이 있는데, 조 교수에 따르면 테라는 이 장치들을 제거하고 시작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일종의 차용증이다. 따라서 담보가 있어야 한다. 테라는 그 담보를 루나라는 암호화폐로 했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도 있다. 다이(DAI)라고 하는 것인데, 이 코인은 담보를 200%, 300% 잡는다(과담보). 테라는 과담보의 불편함을 없애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루나와 테라의 교환비율을 수학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을 썼다. 루나 가격이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테라와의 페깅도 금방 회복됐지만, 루나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테라도 이런 문제를 알고 비트코인을 준비 통화로 쌓으면서 테라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달 초 암호화폐 시장이 급락하면서 테라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오히려 독이 됐다.
비트코인 공매도 세력이 테라를 타깃으로 가격을 끌어내렸다는 정황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기술은 어려운 것일까? 블록체인 기술 기업 커먼컴퓨터 김민현 대표에 따르면 기술이라기 보다는 수학이다.
특정한 곳에 페깅된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알고리즘은 수식을 바탕으로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코딩을 짜면 되는 일이다. 김 대표는 이런 코딩을 짜고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테라와 유사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2014년부터 존재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비트셰어라는 곳에서 비트USD라는 것을 만들었고, 스팀 달러라는 코인도 있었다. 이런 코인들은 처음에는 잘 작동했으나, 암호화폐 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페깅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렇다면 붕괴 직전까지 테라를 일약 스타로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디파이(DeFI, 탈중앙금융)다.
# 가공의 쓰임을 만들다…앵커 프로토콜
테라는 루나라는 코인과 쌍으로 움직인다. 원래 루나는 티켓몬스터를 만든 신현성 대표가 이커머스에서 활용하기 위해 디자인한 코인이다. 신 대표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암호화폐들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두 사람은 각자의 사업을 하기로 하고, 테라는 전적으로 권 대표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이러다 보니 루나를 쓸 곳이 없어졌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디파이 플랫폼이다. 테라를 맡기면 연 20%에 달하는 이자를 테라 코인으로 준다는 것.
암호화폐 트레이딩 기업 샌드뱅크의 백훈종 공동창업자 겸 COO는 “권 대표가 디파이를 통해 테라의 가공 수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테라를 예치하면 높은 이자를 준다는 것으로 테라에 대한 인공적인 수요를 만든 것.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된 테라의 규모는 최고 180억 달러에 달했다. 단기간 내에 엄청난 자금이 몰려든 것이다.
백 COO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테라를 빌려가는 대출 수요보다 이자를 받으려고 테라를 예치하는 수요가 훨씬 커졌다”며 “이런 구조, 이런 가공 수요로는 더 이상 테라 시스템이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루나-테라의 원래 아이디어는 수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그리고 디파이라는 금융 장치와 맞물려 완벽한 것 같았다. 이러한 성공 요소들이 엇박자를 내면서 파국을 맞은 것이다. 이 파국을 만든 권도형 대표의 리더십도 비판의 대상이다.
# 제 역할을 못한 밸리데이터(검증자)
테라 블록체인에는 다수의 ‘밸리데이터’라고 하는 검증자들이 있다. 블록체인은 하나의 노드에 정보와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다. 테라 사태에서는 밸리데이터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권 대표의 주도하에 진행된 고금리 디파이 상품에 대해서도 그것이 왜 20% 금리인지, 이렇게 높은 금리가 유지 가능한지 진지한 토론이 없었다. 테라 커뮤니티 안에서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대응책이 나오거나,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 샌드뱅크 백 COO는 권 대표가 이번 사태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진행하고 있는 테라 회생 방안이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탈중앙이라는 기술적 이념을 구현해야 할 CEO의 말과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권 대표는 다수의 해외 언론,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지나친 자신감을 나타냈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나는 돈 없는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코인이 무너질 것인데, 이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여과되지 않은 말들을 던졌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혁신을 주도하는 사업가들도 비즈니스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생태계의 안정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이 최우선인 비즈니스 세계지만, 남을 깎아내리고, 일방적인 소통으로 일관한다면 타깃이 되기 마련이다.
권 대표는 한국인으로서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흔치 않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며 이름을 알렸다. 일부 언론에서는 테라를 K코인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권 대표의 테라가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 한국의 블록체인 업계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모르겠다. 테라폼랩스 회사 자체는 싱가포르에 설립됐고, 부산과 서울 사무소는 테라 사태 직전 폐쇄 절차를 밟았다. 권 대표 본인도 주로 싱가포르에 머물며 사업을 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 풀어야 할 과제들
테라는 실패했다. 국내 피해자만 30만 명에 육박한다. 피해 금액이 언제 회복될 것인지, 회복이 가능한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는 테라의 실패다. 스테이블코인 전체가 실패한 것도 아니고,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중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코인이 있다. 이번 실패를 거울 삼아 수학적으로, 기술적으로 더 보강된 스테이블코인이 나올 것이다.
이미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실제 쓰임이 있는 블록체인과 코인을 기반으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기술을 적용하면 된다. 충분히 탈중앙화돼 있어서 검증자들이 수시로 문제를 찾아내는 블록체인 위에 스테이블코인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이 그 후보다.
놀라운 것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테라 사태 직후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은 맞지만 실패는 전염되지 않았다.
탈중앙 블록체인은 잘못된 리더십으로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릴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행방을 감췄고,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도 유력한 커뮤니티 멤버일 뿐 제왕적 권력은 없다.
마지막으로 디파이는 아직도 기존 금융을 대체할 유력 후보다. 앵커 프로토콜은 높은 이자로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그 작동 원리 자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역사는 실패를 통해 인류가 전진해왔음을 말해준다. 단, 그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이 기사의 원문은 한국일보에 28일 게재한 기승전 비트코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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