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현재의 고물가 흐름이 끝나면 향후 장기 저성장·저물가 흐름이 다시 나타날 수 있지만, 코로나19 당시 사용했던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을 다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양극화가 인플레이션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변화하는 중앙은행의 역할: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2022년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 됐을 때 장기 저성장·저물가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 활용했던 정책들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구조적인 저상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 때 사용했던 기준금리 인하 등 확장적 통화정책이 효과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단 뜻이다.
그는 “인플레이션 진정시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태국, 중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게 있어 저물가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게 조언한 것처럼 한국이나 여타 신흥국들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 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의문을 던졌다.
그는 “지난 10여 년 간 중앙은행의 실제 자산규모 변화를 보면 주요 7개국(G7) 국가의 중앙은행 자산규모는 2007∼2020년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3.8%에서 31.0%로 크게 늘어났지만 신흥국의 경우 4.0%에서 6.2%로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증가에 그쳤다”며 “이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의 경기부진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도 신흥국 입장에서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마냥 확장적으로 운용할 수 없었던 주요 제약요인 이었다”며 “선진국과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 활용은 자칫 통화가치 절하 기대로 이어져 자본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으로 인플레이션 기대 안착에 있어서도 선진국에 비해 신뢰성의 제약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결과 과거 평균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선진국이 직면하고 있는 고 인플레이션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게 됐지만 이를 다행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신흥국의 경우 선진국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장적 재정·통화정책과 더불어 일부 국가에서는 그간 터부시 돼 온 국채 직접 인수에까지 나섰다. 그럼에도 심각한 환율 절하나 자본 유출이 초래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이는 신흥국의 자산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들이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 등 글로벌 공통 충격에 대한 전세계적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선진국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자산매입에 나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흥국에 대한 불이익은 크지 않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스럽다”며 “대규모의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다시 이루어진다면 환율과 자본 흐름 및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국의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의 저금리·고물가 기조 속에서 통화정책 운용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도 토로했다.
이 총재는 “지금 우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중앙은행의 역할이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음을 깨닫고 있다”며 “확장적 재정정책과 더불어 저금리 및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쌓인 수요압력에 팬데믹으로 등으로 1970년대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의 충격 회복이 계층별·부문별로 불균등 나타났는데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 속에, 중앙은행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소득 양극화와 부문간 비대칭적 경제충격의 문제들을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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