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박은비 기자 = 4월 경상수지가 2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가운데, 미 소비자물가까지 41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면서 미 중앙은행의 긴축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달러 강세로 인해 정부 개입이 더이상 먹히지 않는 한계에 달했다며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금융 시장에 따르면 전날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68.9원)보다 15.1원 급등한 1284.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1.1원 상승한 1280.0원에 출발했다. 장중 한때 1288.90원까지 치솟았으나 장중 기준으로 지난달 12일 기록한 연고가(1291.5원)는 넘지 못했다. 환율이 1280원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달 16일(1284.10원) 이후 18거래일 만으로, 기간으로 보면 약 한 달 만이다.
외환 당국은 환율이 1290원에 육박하자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원화 약세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이날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과도한 변동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외환당국은 시장 내 심리적 과민반응 등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외환당국이 공식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7일, 4월 25일 이후 두 달 만이다.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면서 경상수지도 악화돼 원화 가치 하락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전년동월대비 2억6000만 달러 감소하면서 8000만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인 것은 2020년 4월(-40억2000만 달러) 이후 2년 만이다. 이로써 경상수지는 2020년 5월부터 23개월 째 이어온 흑자 행진이 중단됐다.
경상수지가 적자 전환한 것은 유가 급등에 따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큰 폭 축소된 데다, 삼성전자 등 12월 말 결산법인의 외국인 배당 지급으로 본원소득수지가 32억5000만 달러 적자를 보인 영향이다.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4월 상품수지 흑자 규모는 29억5000만 달러로 전년동월(49억5000만 달러) 대비 흑자폭이 20억 달러 축소됐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로 오르는 등 다시 급등하고 있어 상품수지 흑자폭이 앞으로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상품수지 흑자폭은 3월과 4월 각각 25억4000만 달러, 20억 달러 축소됐다. 경상수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품수지 흑자폭이 줄어들 경우 적자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정점을 예상했던 미 소비자물가까지 급등세를 보이면서 미 연준이 이번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5월 미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대비 8.6% 올라, 1981년 12월(8.9%)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 피크아웃(정점)에 대한 기대가 옅어지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이로 인해 ‘자이언트 스텝’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미 연준이 6월 회의에서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종전 3.6%에서 40.3%로 크게 높아졌다. 0.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59.7%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적자가 일시적이라는 지적이지만, 미 중앙은행의 긴축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적자로 인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악화에, 미 물가 급등에 따른 고강도 긴축 우려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게 되면 종가 기준으로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모든 통화대비 큰 폭 상승하면서 원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현재 1290원대까지 육박하게 치솟은 환율은 FOMC를 앞두고 심리적인 영향도 크기 때문에 회의 결과가 나오는 다음주 1300원 터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백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피크아웃(정점)론이 뿌리채 흔들렸기 때문에 당분간 달러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며 “미 연준에 대한 경계감과 인플레이션 피크아웃, 중국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변수가 있어 언제까지 원화 약세가 지속될지는 속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는 얘기니, 환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야 원화 약세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1300원 돌파는 기정 사실이고, 정부 개입도 먹히지 않아 올해까지는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경상수지 악화에 더해 지난주 미 물가 급등으로 미 연준이 긴축 속도를 높이고 있고, 미 실물경제 침체 우려도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여기에 자이언트 스텝 이야기도 다시 나오고 있고, 연말 기준금리가 2.75%에서 3.25%까지 올라 간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9월 FOMC 이후까지도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9월에 미 긴축 태세가 어느정도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 않는 한 경기 침체 가는성이 높아지면서 올 4분기는 엄청난 혼란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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