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 16억 달러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477억1000만달러로, 4월 말 4493억달러보다 15억9000만달러 줄었으며, 3월말 이후 3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2.06.07. jhope@newsis.com
달러 강세 대비 원화 가치 하락폭 커져
환율 1300원대 역대 세차례 불과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당시 수준인 1300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다음 달도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시사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돼 원화 약세 압력을 더 키우고 있다.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외국인 자본이 유출되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소비자물가도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97.3원) 보다 4.5원 상승한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300원대에서 마감한 것은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2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역대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건 1997~1998년 외환위기, 2001~2002년 닷컴버블 붕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 금융시장이 경제위기 당시 수준에 들어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러 강세 대비 원화 가치 하락폭도 커졌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지난해 말 95.593에서 22일(현지시간) 103.981로 8.77% 올랐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188.8원에서 23일 1301.8원으로 올 들어 9.50% 뛰었다. 달러 강세에 비해 원가 가치 하락폭이 더 크다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화 가치 하락폭이 더 작았었다.
전문가들은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고 본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매도해 달러로 환전하는 역외 송금 수요로 자본 유출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인의 주식·채권 등 증권투자자금은 석 달 연속 순유출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외국인의 주식 투자자금은 12억9000만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5월 말 원·달러 환율(1237.2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조2000억원이 빠진 것으로, 4개월째 순유출을 이어갔다. 4개월 간 순유출 규모가 113억4000만 달러에 달한다. 5월 외국인 주식과 채권 투자자금을 합한 전채 증권투자자금 역시 7억7000만 달러 빠져나가 3개월째 순유출을 기록했다. 미 연준의 긴축 강화, 중국 경제 둔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이어진 결과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에서 아직 신흥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는 원화 약세가 커지면 변동성이 커지고,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이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을 밟게 되면 한미 금리가 역전될 수 있는데 역전 폭이 0.5%포인트 이상 나게 되면 국채 시장에서도 자본이 빠져 나가는 등 자본유출이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의 한 위원도 지난달 금통위에서 “올 들어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축소된 가운데 내국인의 해외 직·간접투자가 확대되고,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도 순유출을 지속하고 있어 원화 절하 압력과 외채증가 유인이 커진 상황”이라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공공부문의 중장기 채권투자의 경우 대부분 환헤지되지 않아 내외금리차의 영향이 작지 않으므로, 적절한 수준의 내외금리차를 유지하는 것이 자본 순유출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단기외채비율,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등이 안정적이라 대규모 자본유출 우려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대외채무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26.7%로 전분기(26.9%) 대비 0.7%포인트 늘었다. 지난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0.44%포인트로 전월(0.33%포인트) 보다 소폭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현재 한국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1.75%로 같은데 7월에 미국이 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한미 금리가 역전이 되는 상황에서 원화까지 약세를 보이면 자본유출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며 “스와프 포인트가 마이너스인데 더 내려가도 현재 수준에서 배팅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성을 보는 것이라 영향이 크지 않고, CDS 프리미엄도 아직 안정적이라 현재로서는 극단적으로 자본유출을 우려 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자본유출이 우려가 커질수 있다”면서도 “다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넣으면 떼인다’고 여길 정도는 돼야 자본유출이 생길 텐데 그 정도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신뢰가 엉망인 거 같지는 않아 자본유출 우려를 크게 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 역시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이 환율의 물가상승 기여도를 추정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물가가 0.06%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분기 물가 상승률 3.8% 중 환율 기여도는 0.34%포인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의 장기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추가로 가중시킬 수 있다”며 “환율의 물가전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 상승기와 달리 수요와 공급 요인도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 환율 상승이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에 미치는 영향에 보다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원자재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입 물가가 올라가고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며 “원화 약세시 수출 호조로 성장을 견인했던 과거와 양상이 다르게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 재정수지 적자로 쌍둥이 적자도 우려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승혁 연구원은 “1970년대 석유파동 시기에도 원자재 가격이 2~3배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물가가 안정적이었다”며 “당시에는 환율이 하방 압력을 받았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라 1300원대를 지속하게 되면 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원화 가치 하락이 수출에 긍적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현재는 수출 상대국의 경기둔화로 한국 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상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어 고환율이어도 수출이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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