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한 엘살바도르가 60%에 이르는 손실을 입은데 이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엘살바도르 정부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 1월에 만기가 되는 8억 달러(약 1조456억원)의 외채를 상환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거나, 국가를 디폴트 상태로 몰아넣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정부는 최근 비트코인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60%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엘살바도르 정부는 국가 예산의 15%를 투입해 비트코인을 샀다.
엘살바도르는 지난해 9월 전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등록했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아홉 차례에 걸쳐 총 2301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했다. 매수 시점 가격을 기준으로 1억447만 달러(약 134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암호화폐 애호가로 알려진 부켈레 대통령은 직접 비트코인을 송금하고 결제할 수 있는 전자지갑 ‘치보(chivo)’을 개발했다. 그리고 치보를 내려받는 국민에게 평균 연간 수입의 1%에 해달하는 30달러를 지급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엘살바도르 성인의 60%인 약 300만명이 치보를 내려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내에서 비트코인 사용량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보 이용자의 10%만이 최초로 지원받은 30달러를 쓰고도 앱에서 비트코인 거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앱을 내려받은 국민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엘살바도르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에선 지난해 9월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가 된 엘살바도르 소재 기업 중 비트코인 거래를 한 기업은 14%에 불과했고, 그 안에서 사업적 가치를 인지했다고 답한 기업은 3%에 불과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고향에 있는 친척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비트코인을 사용하라는 부켈레 대통령의 요구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치보 등 디지털 화폐 결제 앱이 송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격 급락에도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등록한 조치가 암호화폐 산업을 진흥시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마저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 화폐 채택 이후 비트코인 관련 신규 기업은 48개에 불과했다. 전체 신규 설립 기업 가운데 2%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켈레 대통령은 낙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을 80개를 1만9000 달러(약 2484만원)에 추가로 매수한 사실을 밝히며 “비트코인은 미래다. 싸게 팔아줘서 고맙다”라고 적었다.
이 같은 재정 위기에도 부켈레 대통령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범죄조직 소탕과 연료 보조금 지급으로 엘살바도르 국민 10명 중 8명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정경대 공공정책 전문가인 프랭크 무치는 “부켈레 대통령은 건전한 재정관리보다 공공 이미지에 더 신경을 썼다”며 “이는 국가에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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