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더 오르면 유럽 우크라에 양보 압박” 기대
美·나토는 여름·가을 대반격으로 푸틴 양보 노려
푸틴 겨울 전략 vs 나토 여름 전략 충돌하는 국면’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하루하루 전해지는 우크라이나 전황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감정의 굴곡을 겪는다. 잔혹한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울분에 차 욕을 하거나 통쾌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5개월째에 접어든 전쟁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며 전쟁 장기화를 경계하는 칼럼을 실었다. 푸틴이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군이 상당한 전과를 올리는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멍청한 러시아군인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전쟁 초기 수천명의 병력을 잃는 무능한 모습에서 벗어나 보다 효과적으로 전투하는 방법을 드디어 깨달았다는 뜻이다.
러시아군이 멀찌감치 떨어져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들을 폭격해 폐허로 만들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최악의 국면이 지나갔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내 생각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많은 러시아군 병사와 장군들이 죽은 것 못지않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이 지쳐 있다. 전쟁으로 유럽에서 천연가스, 휘발유, 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이 상태가 겨울까지 이어지면 유럽연합(EU)의 많은 주민들이 연료와 먹을 것 사이에서 무엇부터 사야할 지를 두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전쟁 국면은 따라서 블라디미르 푸틴의 “겨울 전략”과 나토의 “여름 전략”이 대치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푸틴이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 분열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면서 전쟁을 질질 끌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유럽의 평균 기온이 이례적으로 낮으면,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이례적으로 부족하면, 물가가 이례적으로 높으면,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정전사태가 널리 확산되면,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와 종전협상을 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푸틴은 생각한다.
따라서 푸틴은 틀림없이 탈진한 러시아 병사들과 장군들에게 “크리스마스까지만 기다려라. 겨울은 우리 편”이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전혀 터무니없는 전략이 아니다. 영국 더 타임즈의 지난 주 보도다. “백악관 당국자들이 유럽이 연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추가로 줄이는 새로운 제재로 인해 유가가 다시 급등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타격을 주고 미국과 다른 선진국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이미 전세계에 확산한 심각한 식량위기를 더 심화할 것이다.” 나토와 EU의 러시아 석유 수입 억제 노력으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면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갤런당 7달러를 내야 한다.”
블룸버그는 유럽은 갤런당 9~10달러도 흔하지만 천연가스 가격이 연초 대비 “약 700%” 오르면서 유럽이 경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나토, 미국,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당연히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 우리의 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은 우리의 동지다. 푸틴의 지친 군대에 큰 타격을 입히면 그가 휴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이다.
이 역시 엉터리 전략은 아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일부 전과를 내고 있지만 큰 대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불과 5개월새 최소 1만5000명이 전사했다는 것이다. 전사자수만도 엄청난데 부상자는 2배 이상이다. 1000대 이상의 러시아군 탱크와 대포가 고철이 됐다.
미 당국자들은 푸틴이 당장 우크라이나 동부를 돌파하고 오데사항을 점령해 우크라이나를 봉쇄함으로써 경제를 옥죌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더 타임즈가 이번 주 보도한 대로 푸틴은 현재의 동부 전선을 유지하는데만도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동원령을 내려 정치적 역풍을 맞는 걸 피하려 “비밀 모병”을 진행중인 이유다.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가난한 소수민족과 우크라이나 반군, 용병과 국방경비대를 동원하면서 자원자들에게 큰 현금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 푸틴은 동원령을 발려알 경우 그동안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러시아 국민들에게 말해온 우크라이나 침공이 실제로는 큰 전쟁이며 더 나빠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될까 주저한다.
나토는 분명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이 지원한 신형 M142 고기동 다연장로켓(HIMARS)으로 올 여름과 가을 러시아군에 큰 피해를 내기를 희망한다. 그렇게만 되면 푸틴은 전진하는 건 고사하고 밀려나게 돼 휴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포로교환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인도주의적 피난 통로도 개설될 수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도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푸틴과 협상해야 한다는 유럽국들의 압박도 줄어들 수 있다.
푸틴이 전쟁을 완전히 끝낼 조짐은 전혀 없지만 일종의 휴전을 받아들여 에너지와 식량 사정이 완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장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들이다. 푸틴의 겨울전략과 나토의 여름 전략이 부닥치는 국면이다.
이리나 베레슈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러시아 점령 남부 주민들에게 서둘러 피난함으로써 러시아군이 임박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주민들을 인간방패로 삼지 못하도록 하라고 호소한 것은 그래서다. 그는 “우리 군이 곧 탈환할 것이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떠나야 한다. 곧 큰 전투가 벌어진다”고 했다.
푸틴이 어려움에 빠져 밀려날 때 어떻게 대응할 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휴전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동원령을 내려 병력을 증원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푸틴이 권좌에 있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를 쫒아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건 러시아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다. 단지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푸틴의 전쟁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가 혼자서 구상하고 준비했고 지시했고 정당화했다. 대국인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가 빠진 모습은 푸틴으로선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푸틴이 휴전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할 순 있지만 일시적일 뿐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까지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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