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가 막대한 코로나 팬데믹 구제 예산 집행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닐 것으로 예측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반성하는 내용의 칼럼을 21일(현지시간) 자 NYT에 실었다.
2021년 초 1조9000억달러(약 2494조원) 규모의 구제 예산안이 제안됐을 때 물가상승 촉발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했고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쪽이었다. 당시 판단이 잘못이었음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당시 논쟁은 반대되는 경제학 이념간 논쟁이 아니었다. 중도좌파인 래리 서머스와 딘 베이커 등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이 논쟁을 주도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생각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모두 적자를 감수한 재정지출이 수요를 진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낮은 실업률의 강력한 경제가 물가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논쟁의 초점은 강도의 문제였다. 구제대책은 엄청난 액수였고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보통 규모의 재정 적자로도 경제 과열을 심하게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 증가와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지속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물가상승이 촉발된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걱정안해도 된다는 사람들은 구제대책이 대폭적인 GDP 증가를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제책의 큰 몫을 일회성 세금 감면이 차지하기 때문에 소비되기보다 저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큰 몫은 주와 지방 자치단체에 대한 지원이어서 몇 년 동안 서서히 집행될 것으로 봤다.
우리는 또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고용과 물가상승의 상관관계가 크게 낮기 때문에 GDP와 고용이 과열되더라도 물가를 급격히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큰 폭의 물가상승에는 다른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이상한 대목이 있다. 구제책의 경기진작 예산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소비자들이 받은 지원금은 대부분 저축으로 이어졌다. 주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의 지출은 GDP의 1% 미만 정도만 늘어났다. 실업률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높았고 실질 GDP는 팬데믹 이전 보다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유는?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팬데믹 때문에 생긴 혼란 때문이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삶의 방식 변화가 지출 내용을 크게 변화시켰다. 사람들이 서비스 지출을 줄이고 상품 구입을 늘려 물자공급난이 심해졌다. 이 점은 미국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고물가를 설명한다.
그러나 혼란이 촉발한 물가 상승이 경제의 일부 부문에만 국한됐다가 확산했다. GDP나 실업률로 파악되는 것보다 훨씬 경제가 과열됐음을 높은 구인률과 같은 지표로 알 수 있다. 조기 은퇴, 이민 제한, 아동 복지 지출 감소 등과 같은 요인들이 작용해 과거와 달리 경제의 생산성이 줄어들었다.
또 과거의 경험에 따르면 경기 과열로 인한 물가상승이 이 정도로 높아질 수는 없었다. 결국 물가상승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물가상승을 경고한 사람들이 맞지만 그들이 주장한 근거는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구차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 역시 사실이다.
과거 경험이 우리를 오판하도록 한 한가지 이유가 최근 몇 년 동안 경제가 과열되지 않은 채여서 물가 상승이 촉발되지 않은 점이다. 경제가 활황이라면 GDP 상승과 물가상승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을 것이다.
또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과 이후 과정이 큰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가 새로운 혼란 요인이 됐다.
미래를 전망한다면 경제가 냉각되기 시작했다. 1/4분기의 GDP 감소는 아마도 이례적이지만 전반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물가상승이 이미 최고조에 달했거나 직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몇 달 뒤면 지금보다는 덜 당혹스러울 것이다.
아무튼 이번 일로 겸손을 배웠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의 표준경제모델은 꽤 잘 맞았기에 이 모델을 아무 생각없이 2021년에 적용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 그런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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