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장중 86달러…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
#중국 경제지표 둔화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전문가들 “당분간 낮게 유지 80달러 안착은 어려워”
#동유럽 리스크로 다시 100달러 반등 가능성도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고공행진을 지속했던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로 내려가면서 6개월 전인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중국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수요 감소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다시 동유럽 석유공급 중단에 나서거나 중국이 코로나19 봉쇄조치를 해제할 경우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등 반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7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9월물 가격은 3.57% 급락한 배럴당 88.3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월 2일(88.26달러)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장중 한때 배럴당 86.82달러까지 내려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발발했던 지난 2월 24일 WTI 가격인 92.81달러를 하회하는 가격이다. 영국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10월물 브렌트유도 3.11% 급락한 배럴당 95.10 달러에서 마감했다. 장중에는 92.79달러까지 내려가면서 80달러대 하향 이탈을 시도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중국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것이다. 중국 경제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밑돌면서 중국 인민은행이 금리를 인하하자,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됐다. 중국은 전세계 석유 소비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제유가 하락에도 천연가스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인 2월24일 메가와트시(MWh)당 4.568달러 였으나 15일 현재 8.841달러로 여전히 높다. 러시아가 자국에서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을 통한 천연가스 송출량을 20%로 줄인 영향이다.
국제유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해 왔다. 지난 3월 7일에는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장중 13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브렌트유는 이날 장중 한때 배럴당 139.13달러에 거래됐고, WTI도 130.5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2008년 7월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배럴당 100~120달러선에서 거래돼 왔던 WTI는 지난달 배럴당 90달러선으로 내려섰고, 이번달에는 다시 80달러선까지 내려왔다.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인 것은 중국 경기침체 우려에 원유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인식 때문이다.
반면 공급을 둘러싼 우려는 여전하다. 세계 경기 둔화 우려로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러시아 등 비(非)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는 증산 규모를 축소했다. OPEC+는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정례 산유국 회의에서 9월 원유 증산량을 하루 10만 배럴로 결정했다. 이는 7~8월 증산량인 하루 64만8000 배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원유재고는 늘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8월 첫 주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1220만 배럴로 2020년 4월 이후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 반면 전략비축유 소비량이 커 전략비축유를 더한 원유 재고는 아직 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란과 서방 국가들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가능성은 유가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합의가 복원되면 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 제재가 해제돼 원유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
국제유가 상방 압력과 하방 압력이 동시에 나타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망기관들도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3개 주요 에너지 기관의 올해 전세계 원유 수요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IEA는 폭염과 높은 천연가스 가격에 따른 발전 수요 증가를 고려해 올해 원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170만 배럴에서 210만 배럴로 상향 조정했다. 또 러시아 원유 수출 제재 효과가 예상보다 작아 수개 월 내 원유 시장에 공급이 넘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OPEC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봉쇄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해 올해 원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340만 배럴에서 310만 배럴로 낮췄다. EIA는 미국의 산유량 전망치를 일부 하향 조정했으나 산유량이 완만하게 늘어나 2019년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기존의 전망은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유럽연합(EU)간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하고, 천연가스 가격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이 겨울철을 앞두고 가스 대체제로 원유 수요가 늘어나면 국제유가가 다시 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중국 역시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될 경우 수요 증가로 이어져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러시아는 송유관 가동 중단을 통해 EU 회원국을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기업 트란스네프트는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로 향하는 남부 드루즈바 송유관 루트 가동을 중단했다. 러시아가 EU의 제재 탓에 우크라이나 석유전송 업체 우크르트란스나프타에 송유관 이용 요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후 10일 송유관 가동이 재개됐지만, 러시아와 동유럽 석유 공급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수요가 줄고 있고, 미국과 이란간 핵 협상 타결될 경우 원유 공급난이 완화되면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서도 “다만 유로지역이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대란을 방어할 만한 천연가스 재고를 비축하지 않을 경우 대체제인 원유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중국이 당분간은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향후 봉쇄 조치를 완화해 경기 회복 가능성이 부각될 경우 다시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OPEC+가 올해 수요 증가 전망치를 소폭 하향 조정한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OPEC+의 증산량은 상반기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로지역에서 원유 대체제인 천연가스 재고가 부족한 데다 미국의 원유 비축물량도 9월이 지나면 물량이 소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에서 안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천연가스가 비싸고 수급이 불안정해 유로 지역의 천연가스가 부족하게 되면 대체제인 원유 수요 증가로 이어질수도 있다”며 “9~10월 중순까지는 유가가 낮게 유지되다가 겨울철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10월 말부터 다시 오를 수 있는데, 여기에 공급 부족 이슈까지 추가될 경우 가능성은 낮지만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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