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최근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한 A 프로젝트 대표는 자신들의 코인 상장을 한 마디로 ‘운빨’이라고 말했다.
이메일로 상장 신청을 넣은 후 이제나저제나 연락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코인 상장이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A 대표는 그러나 코인 상장 절차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암호화폐 거래소의 민낯을 보고야 말았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은 하루에 1289억 달러(176조원) 씩 거래된다. 91%는 달러 또는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된다. 원화 거래량은 3위에 랭크돼 있다. 블록미디어가 자체 집계한 국내 암호화폐 일일 거래량은 3조5000억 원으로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글로벌 거래소 1위 바이내스와 급부상하는 FTX 등이 한국 암호화폐 시장 진출을 고려할 정도로 큰 시장이다. 그러나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코인 상장에서부터 극도의 불투명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블록미디어는 3회에 걸쳐 국내 코인 상장의 문제점, 마켓 메이킹(market making)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코인 가격 조작,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등을 특집 기사로 정리한다.
블록미디어는 19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실과 공동으로 “가상자산 정책 토론회”도 개최한다. 코인 상장의 문제점을 공론의 장에서 논의하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 언제, 어떻게 상장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A 프로젝트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코인 상장 절차를 밟아보겠느냐는 메일이 예고도 없이 온 후 A 대표는 해당 거래소 상장팀과 이메일과 화상 회의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나갔다.
A 코인이 상장 기회를 잡은 것은 해당 거래소에 ‘작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상장을 기다리고 있던 코인들을 담아둔 해당 거래소의 지갑이 외부에 노출된 것. 코인 상장 전 테스트 지갑을 들켜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는 “조만간 B, C, D 코인이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탈중앙거래소나 해외의 소형 거래소에 상장돼 있던 해당 코인들의 사재기가 확산하자, 돌연 상장을 취소해버린 것.
이 대형 거래소는 코인 상장 일정에 차질을 빚자, 상장 문의 메일을 보내온 다른 프로젝트들을 중에서 B, C, D를 대신할 코인을 급하게 물색한 것이었다.
A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솔직히 놀랐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장 여부를 알려주지 않다가, 갑자기 상장하겠느냐고 답이 왔으니까요. 우리 코인이 상장된 배경을 알고 나서는 B, C, D 코인은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지갑 주소 관리를 못해 유출된 것은 거래소 책임이니까요. 어쨌든 저희는 그 덕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죠.”
# 원칙이 없다
국내 대형 거래소들은 ‘대외적으로’는 코인 상장에 대한 절차와 구비 조건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A 코인의 사례처럼 이 원칙은 고무줄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어떤 이유로 상장이 되고, 상장이 거부되는지 밖에서 알 길이 없다.
다시 A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거래소와 회의를 거듭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가 접촉하고 있는 이 팀이 정말 그 거래소의 직원들 맞나?’ 왜냐하면 상장의 댓가로 부담스러운 규모의 ‘증거금’을 입금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거래소가 상장 수수료를 받는다는 말은 업계에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금 ‘증거금’을 따로 달라고 하니까 의심이 들더라구요. 거래소 상장팀 직원들은 코인이 상장되고 나서, 정해진 일정이 끝나면 증거금은 다시 돌려준다고 했습니다.”
지갑 유출 문제로 상장이 무산된 코인들의 ‘대타’로 A 코인을 상장키로 하면서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내용보다는 각종 마케팅과 수수료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는 증언이다.
대외적으로 얘기하는 코인 상장의 절차와 조건은 거래소의 입맛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명문화된 절차도 아니고, 감독 당국의 검사 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A 프로젝트는 무사히 코인 상장을 마쳤으나, 기어코 ‘증거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 노골적인 뒷돈 요구
A 프로젝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장팀이 요구한 ‘증거금’을 마련해 줬다.
“여러 사람들한테 수소문을 했습니다. 우리와 접촉한 팀이 진짜 해당 거래소 직원들인지요. 맞더라구요. 약간 찜찜했지만 요구하는 대로 ‘증거금’을 입금해 줬습니다. 프로젝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금에 여유가 없었지만, 어찌어찌 돈을 구해서 테더로 바꿔 지갑으로 송금을 했습니다.”
A 코인이 상장이 되고, 한참이 지나도 거래소가 돌려주기로 한 ‘증거금’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A 대표가 몇 번이나 증거금을 돌려달라는 메일을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죠. 왜냐하면 증거금은 부모님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돈이었거든요. 안되겠다 싶어서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A 대표의 의뢰를 받은 변호사는 A 프로젝트의 법률 대리인 자격으로 해당 거래소에서 정식으로 ‘증거금’ 반환 요구 메일을 보냈다. 내용증명까지 붙여서 정식으로 항의하자, 그제서야 ‘증거금’을 돌려줬다.
# 누구를 위한 마켓 메이킹인가?
국내 거래소들은 A 프로젝트 사례는 특이한 경우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케이스다. 거래소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모조리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뒷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장 전후에 거래소가 ‘마켓 메이킹’을 기본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신규 코인이 상장된 후 일정 기간 코인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라’는 요구다. 마켓 메이킹이라는 이름의 가격 조작을 종용한 것.
본래 마켓 메이킹은 신규 코인이 거래가 잘 될 수 있도록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을 뜻한다. 매수-매도를 중간에서 원활하게 해주는 것으로, 주식시장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다.
그러나 코인 시장에서 마켓 메이킹은 그 뜻이 다르다. 이른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다. 누군가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린다. 주로 신규 상장 코인이다. 개미 투자자들이 가격 상승을 보고 따라오면 그 때 코인을 팔아 시세 차익을 올린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마켓 메이킹 조건을 문서로 남기지는 않는다. 코인 마케팅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계획서를 요구한다.
# 빗썸의 아로와나 코인 사례
블록미디어는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이 한글과컴퓨터의 아로와나 코인을 2021년 4월 상장할 당시 요구한 ‘유통량 확인서’라는 서류를 입수했다. 이 서류에는 코인 상장 이후의 ‘마케팅 물량’이 기재돼 있다. 이것이 ‘마켓 메이킹’을 뜻하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당시 아로와나 코인 상장 실무를 맡았던 한컴 내부 직원에 따르면 마케팅 계획을 수정하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것 때문에 코인 상장 일정이 연기됐다고 말했다.
아로와나 코인의 경우 상장 직후 50원이었던 코인 값은 5만원 선까지 수직 상승한다. 이같은 가격 급등이 ‘누군가 의도적으로 수행한’ 마켓 메이킹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코인 상장 이대로는 안된다](중) 기사에서는 실제 아로와나 코인의 마켓 메이킹 과정을 추적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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