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타로핀] 투자의 대상인 다양한 자산을 모아서 위험도 순으로 정렬하면 최상위 등급에 가상자산이 존재할 테다. 숱한 실패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전문가들은 위험 자산을 건들수록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며 목이 터지라고 외쳐댄다. 응당 코인러들도 이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라면 이들의 리스크 헷지 전략은 울트라 리스크인 잡알트 코인을 사놓고 저글링 리턴인 리워드를 타먹겠다는 방식이다. 모두 알다시피 그들의 결과는 참담했다. 거래소 코인을 사놓고 거래 수수료를 배당으로 타먹던 이들이 망했다. 디파이 곡괭이 코인을 사놓고 스테이킹으로 이자를 받던 이들도 망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P2E 코인을 사놓고 플레이이를 통해 보상을 받는 이들이 망하는 중이다.
거래소 코인이나 곡괭이 코인에겐 흥망성쇠의 시기가 존재라도 했지만, P2E는 사실상 엑시인피니티 하나 외에는 한 번의 꿈틀 조차 해 보지 못한 채 나오자마자 차트는 미끄럼틀이 되어 바닥으로 처박기에 급급하다. 개발사는 사짜들이 되고, 홍보한 이들은 선동꾼이 되고, 투자한 홀더들은 잔고가 피티기는 P2E 게임은 왜 이 꼴이 된 걸까.
- 출생의 비밀…리퍼블리싱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게임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을 보자. 콘솔 게임의 경우 29.5개월, PC 게임은 18.9개월, 모바일 게임은 16개월이 평균적으로 들어간다. 육체와 영혼을 갈아 넣는 동안에 유행하는 장르가 바뀌기라도 하면 그 게임은 출시하자마자 망하거나 심할 경우엔 출시조차 못 한 채 폐기 처분돼버린다.
게임판보다 더 빠르게 유행이 바뀌고 메타가 흘러가는 코인판이건만 P2E 프로젝트의 스피드는 감탄할 정도다. 개발자도 한두 명에 불과한 팀을 꾸리고 몇 달 이내에 플레이할 수 있는 테스트 버전의 게임이 턱 하니 나온다. 빨리 빨리의 민족도 놀랄만한 속도의 비결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재활용 능력이다.
기성 게임 업체에서 시장성이 없다며 버린 게임의 판권을 가져와서 갓 찍어낸 코인을 결제 수단으로만 붙인 체 코인러들에게 P2E 게임으로 소개된다. 업자들 용어로 리퍼블리싱이고 게이머들 용어로 짬처리 되겠다.
이렇게 통째로 주워온 덕분에 개발사는 개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NFT 민팅과 코인 발행을 외주로 맡긴다. 디스코드 세팅과 커뮤니티 관리를 알바로 고용한다. P2E 개발사가 인력 관리 사무소가 돼버렸다. 콘텐츠를 추가할 기획 능력도 없고 버그를 수정할 능력도 전무한 탓에 이들의 최대 목표는 남들보고 빠른 엑싯이 돼버린다.
- 사용자 관리…사다리 걷어차기
이미 망한 게임의 판권을 사고, 코인 발행과 NFT 민팅을 외주로 주고 커뮤니티 알바를 고용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엑싯만을 생각하며 눈 뻘게진 개발사가 자기 주머니를 쓸 가능성은 제로. 당연하게도 코인러에게 NFT와 코인을 판 돈으로 시작한다.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선 구매자에게 게임 내에서 혜택을 당근으로 제공 하는데 이게 사다리 걷어차기로 작동된다. 게임 시작도 전부터 코인 홀더와 비홀더의 차별이 깔리는 거다.
기성 게임은 사용자를 지속적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두당 만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기꺼이 쓴다. 리니지 개발사인 엔씨 소프트는 작년 마케팅 비용으로 2826억을 썼고, 우마무스메는 올해 2분기 마케팅 비용으로 200억을 썼다. 게임이 지속해서 유지되기 위해선 신규 유입에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핵심이라는 말이다. 일단 사용자를 유치하고 이때 지출한 마케팅 비용은 사용자의 과금으로 멘징을 한다.
이에 반해 P2E 프로젝트는 출시 전엔 화이트 리스트 배정으로 사용자 간에 등급을 나눈다. 출시 때엔 코인 홀딩의 유무로 혜택에 차별한다. 출시 이후엔 막장 운영으로 대기하던 신규 유입자를 발로 걷어차 버리고, 규제 방망이질 당할 땐 규제 준수를 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제한을 걸면서 입구 셔터를 내려버린다.
이미 코인 팔아서 돈은 선불로 챙겼겠다. 신규 유입은 끊겼으니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유일한 방법은 거래소 상장을 통한 펌핑과 덤핑으로 P2E 게임을 하지 않는 흑우들을 털어먹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플레이하지 않지만, 누구나 아는 코인의 등장이다.
- 유일한 플레이 동기…코인 가격
현재 호흡기 달고 버티는 대다수 P2E 게임의 현실은 애잔할 지경이다. 화이트 리스트를 받거나 초기 투자금으로 코인을 살 때만 해도 며칠이면 원금 멘징이 된다며 설레발치던 이들은, 어째 플레이하면 할수록 길어지는 멘징 요구 기간에 어리둥절 이다.
게임 내 경제가 순환되기 위해서는 재화는 항상 결핍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무과금이나 라이트 유저는 성장을 포기하고 플레이로 얻은 재화를 팔고, 헤비 유저는 과금을 통해서 재화를 구입해서 성장해야 한다. 기성 게임에서 찍먹이니 Pay to Win이 적용되는 이유다.
플레이를 통해 코인을 얻는 P2E 게임은 반대로 언제나 재화의 과잉 상태다. 라이트 유저는 플레이를 통해 약간의 코인을 얻고 약간 내다 던지고, 헤비 유저는 플레이를 통해 대량의 코인을 얻고 대량으로 내다 던지는 중이다. 상장 직후 ATH를 찍은 가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스키장과 같은 차트를 그리는 비결 되겠다.
게임을 시작하고 지속할 동기부여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스토리에 녹아들어서 감동을 얻거나 캐릭터의 육성을 통한 성장의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때 얻는 우월감이 우선인 이들도 있다. 불편한 진실로 P2E 게임은 이미 망한 게임을 가져온 탓에 감동이나 성취감이 없다. 탄탄한 사용자층이 없기에 우월감이 아닌 랭킹순위에 따른 코인 보상으로 붙들어둔다. 덕분에 남아있는 P2E 게임을 지속할 유일한 이유는 코인 수익뿐이다. 코인의 가격이 떨어질 수록 사용자들은 이탈되고 프로젝트는 스캠으로 향해 달리고 있다.
- 메타버스 속 P2E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돈을 벌 수 있다고 홍보와 선동을 일삼은 P2E 게임들이다. 이걸 플레이하는 사용자의 유일한 동기는 코인 수익인지라 코인의 가격이 나날이 토막 나는 상황에선 플레이할 이유가 사라진다. 신규 유입도 기대할 수 없고 다른 수익 창출도 불가능한 P2E 플젝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건, 오직 규제 방망이 되시겠다.
얼핏 보면 악재 같은 규제지만, 코인 업자들에게는 가뭄 날 단비 같은 존재다. 원화로 환급이 가능한 상태일 때 사행성을 이유로 등급보류 나 등급취소 판정받는다. 거래가 가능하게 CEX나 DEX에 상장시켜놓고 규제 방망이가 들어오면 얼씨구나 이때다 하면서 혁신에 못 따라오는 규제 탓을 하며 프로젝트를 접으면 된다. 속칭 말하는 명예로운 죽음이다.
오래된 게이머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게임은 돈을 쓰고 재미있으려고 하는 거다’ 재미도 없는 걸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하는 건 노동 되겠다. 다만 현실 세계의 노동은 돈을 안 내고 일을 하는 만큼 돈을 벌지만, 그들이 사는 P2E 메타버스의 노동은 내 돈을 선불로 결제하고 그 돈을 복구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업자는 엑싯하고 한강뷰로 가고, 사용자는 피 터지며 한강 속으로 가는 흥미로운 P2E 세계관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블록미디어의 공식 입장이나 취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