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 넘은건 외환위기·금융위기 역대 두 차례
“한미 통화스와프 절실”…가능성은 낮아
이창용 “통화스와프 체결로 강달러 막는건 오해”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턱 밑까지 오르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시장에서는 과거 금융위기가 다시 찾아 오는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환율 고공행진에도 외환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대응해 한국은행이 추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서 환율을 방어하게 되면 경기가 침체될 수 있고, 당국이 달러 매도를 통한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나설 경우 자칫 외환보유액만 축낼 수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10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1997년 12월 16일 ‘자율변동 환율제’ 채택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대 두 차례에 불과하다. 글로벌 외환위기가 진행중이던 1997년 12월 23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962.0원까지 치솟았고,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2일에는 1570.3원까지 올랐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1380원을 돌파하는 등 14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미 환율 수준은 금융위기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과거 발생했던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당시 모두 환율이 급등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율 급등을 막을 만한 뾰족한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외환당국이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달러 매도로 시장 개입에 나서고는 있지만 환율 상승 흐름은 꺾지 못하고 있다. 외환당국이 고공행진하는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은 올해 들어서만 266억9000만 달러나 줄었다.
구두개입도 환율 상승세를 둔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 외환당국은 올들어 네 차례나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네 차례 모두 환율 상승 흐름을 꺾지 못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 연준의 긴축과 우리나라 경상수지 악화, 중국 경기 둔화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환율 상승을 가져 오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을 특정 수준을 목표로 정책을 펴는건 옳지 않다”며 “과도한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외환 당국의 적절한 구두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공행진 환율을 막기위해서는 구두개입 보다는 실개입에 나서야 하지만, 자칫하면 실탄인 외환보유액만 소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수준의 구두개입은 전혀 효과가 없고 추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닌 과도한 변동성을 막기 위해 달러 매도를 통한 미세조정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이렇게 되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경우 다른 국가들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상황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고, 이로인해 외환위기가 다시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보유액으로 환율 급등을 막을 수 없고, 잘못하면 외환보유액만 고갈되니 놔둬야 된다는 의견도 있는데 변동성이 커질 때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을 안 할 거면 외환보유액을 쌓을 필요도 없다”며 “1997년 과 같은 외환위기가 왔을 때만 외환보유액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시장 불안감을 잠재울 정도인 미세조정은 하되, 추세를 꺾을 정도로는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특정 수준으로 목표를 정하고 외환보유액을 계속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이렇게 되면 투기세력이 붙어 오히려 외환시장 급변동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쏠림 현상을 완화하거나 미세조정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외환보유액을 사용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단기외채비율 등 대외지급능력과 외채건전성을 나타내는 경제 지표를 관리해 외국인 자본유출을 막을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단기외채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 급격히 빠져나갈 우려가 큰 자금으로 지표가 낮을 수록 안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강태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초빙교수는 “외환보유액을 쓰는 것은 현명한 생각 같지 않고, 단기외채 비율과 같은 대외건전성 지표관리를 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거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41.9%로 전분기 말(38.2%) 대비 3.7%포인트 증가해 2012년 2분기(45.6%)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외채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외채무(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27.8%로 전분기 말(26.7%) 대비 1.0%포인트 늘었다. 다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과 2009년 단기외채 비율이 각각 72.8%, 54%였고 단기외채 비중도 2008년(46.6%), 2009년(42.6%) 였던 점을 살펴보면 이 때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이다.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서는 지난해 말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등 위기 때마다 원화 급락세를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2008년 10월 30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에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1427.0원)보다 177원이나 급락했다. 2020년 3월 19일 미국과 600억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시에도 다음날 코스피가 7.4%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은 3.1% 하락하는 등 국내 금융·외환시장이 즉시 반응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화 약세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강달러로 인한 것인 만큼 통화스와프가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또 미국이 한국과 단독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가능성도 낮은 게 사실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상시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의 통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강달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도 8일 기자회견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이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미 연준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삼모 교수는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야 한다”며 “전세계적인 강달러 상황이라 원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경험을 갖고 있다”며 “이로인해 투기세력들이 더 강하게 공격할 수 있어 통화스와프 체결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경 교수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다”며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유동성 우려를 해소한다든가, 공급망 이슈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등 시장의 불안심리를 완화 할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태수 교수는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긴밀히 협의하기로 하는 등 채널을 가동하기로 했는데 아직 활용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우리와 함께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던 9개 국가들도 갖고 있지 못한 채널인데, 이를 잘 활용하면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한은의 추가 ‘빅스텝’도 거론되고 있지만 자칫하면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강삼모 교수는 “추가 빅스텝은 환율만 따졌을 때는 할 필요가 있지만 또 한차례 빅스텝을 하게 되면 소비가 줄고 투자가 꺾여 경제성장에 어려움이 있는 등 경기 침체 가능성이 있어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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