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 돌파 이번이 역대 세번째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미국의 고강도 긴축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국내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수준인 1400원을 넘어섰다. 심리적 지지선인 1400원이 뚫리면서 원화 가치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만, 1400원 돌파에도 이를 글로벌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때와 동일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분석했다.
23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1997년 12월 16일 ‘자율변동 환율제’를 채택한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대 두차례에 불과하다. 글로벌 외환위기가 진행중이던 1997년 12월 23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1962.0원까지 치솟았고,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2일에는 1570.3원까지 올랐다.
지난 2008~2009년 금융위기 때는 저금리와 저물가 기조 속 금융시스템 붕괴 우려에 달러 경색이 나타나면서 환율이 급등했지만, 최근엔 고물가·고금리로 상황에서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공포감에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과거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수준에 직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과거 위기 수준만큼 높지만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 비율은 낮은편이라는 것이다. 또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CDS 프리미엄은 8월부터 하락세를 보이면서 37bp(1bp=0.01%포인트)의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전달(50bp)보다도 더 하락했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 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만기 1년 이하인 단기외채 비율이 최근 들어 다소 높아졌지만, 과거 위기 때에 비해서는 낮다. 한은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기준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41.9%로 전분기 말(38.2%) 대비 3.7%포인트 증가했다. 단기외채비율이 40%를 넘은 것은 2012년 3분기(41.5%) 이후 근 10년 만이다. 또 2012년 2분기(45.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채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외채무(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27.8%로 전분기 말(26.7%) 대비 1.0%포인트 늘었다.
반면, 금융위기 당시에는 단기외채 비율이 최고 70%로 높았다. 단기외채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 급격히 빠져나갈 우려가 큰 자금으로 지표가 낮을 수록 안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또 대외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단기외채비율이 높아진 것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환율 방어에 나선 영향이 크다. 여기에 단기외채가 89억 달러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7월 반짝 늘었으나 8월 들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서만 외환보유액이 266억9000만 달러나 줄었다. 원·달러 환율이 8월 초 1304.0원에서 8월 말께 1350.4원까지 한 달 간 50원 가까이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자 외환 당국이 매도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도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 들어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점은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94억7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이는 5개월 연속 적자 기록으로 지난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었다는 것 만으로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빠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며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등 각종 대내외 악재가 원·달러 환율 급등을 유발시켰지만 달러 수급 등 측면에서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400원 진입이 반드시 위험의 신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자금경색으로 대변되는 신용리스크 확산 리스크와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 때에만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는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위기 국면처럼 부진한 상황은 아니다”며 “환율 레벨을 절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요인도 차이가 크다. 2008년에는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환율이 올랐으나, 현재는 미 연준의 긴축 속도 가속 등으로 인해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영향이 크다. 실제 2008년 대비 달러화 가치도 큰 폭 올랐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2008년 75~85선이었으나 현재 111선으로 당시보다 달러가치가 30~48% 가량 뛰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지금보다 환율 레벨이 높았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는 외환보유고 부족 문제, 대외채무 비율 등이 주요 문제였다는 점에서 국가 채무의 건전성 문제가 핵심 이었다”며 “반면 지금은 과거 환율 급등때와 가장 큰 차이는 대외신인도 지표인 CDS 프리미엄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 비율도 상승 리스크가 매우 제한돼 보이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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