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억제보다 세계경제 빠른 위축 우려 더 커”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일부 경제학자들이 전세계에서 수요가 감소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금리인상이 과도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각국의 금리인상폭이 지난 7월 197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지난 21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0.75% 인상했으며 인도네시아, 노르웨이,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웨덴, 스위스, 대만, 영국도 지난 주 금리를 올렸다.
특히 금리 인상폭이 매우 크다. 지난 20일 스웨덴 리스반크는 기준금리를 1% 올렸다. 리스반크는 지난 2002년 7월 이래 금리를 한번에 0.5% 이상 올리거나 내린 적이 없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중앙은행들이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지난 7월 물가상승률이 1년 전 대비 2배인 9.2%였다. 금리를 올리면 수요가 감소하고 가계와 기업들이 앞으로 몇 년 안에 물가가 안정될 것임을 믿게 만든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물가와 수요 과잉이라는 국제적 문제에 대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우려한다. 이들은 중앙은행들이 과잉대응할 경우 필요이상으로 경기 침체가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IMF 전 수석 경제학자이자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인 모리스 옵스트펠드는 한 글에서 “물가상승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과도한 금리인상으로 전세계 경제가 불필요하게 빠르게 위축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크다”고 썼다.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조절하면서 충격을 점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연준은 지난 21일 다음번 두차례 회의를 통해 금리를 1~1.25%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JP모건의 경제학자들은 캐나다, 멕시코, 칠레, 콜럼비아, 페루, 유로존, 헝가리, 이스라엘, 뉴질랜드, 한국,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이 10월까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에 없이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똑같이 행동할 필요성이 있을까?
한 나라의 물가상승이 그 나라의 내부 요인에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제적 수요가 교역 상품 및 용역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석유 같은 원자재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이 침체에 빠졌던 2008년에도 유가가 올랐었다. 최근 공급망 혼란과 정부의 팬데믹 지원으로 각종 상품의 가격이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수요를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국가 차원에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는 노력이 과도해지기 쉽다. 각국의 과도한 금리인상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질 수 있는 것이다.
WB는 한 보고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금융 및 예산 긴축의 국제적 여파가 누적되면 성장에 미치는 타격이 각국 정책효과의 총계로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커질 수 있다”고 썼다.
이 같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중앙은행들의 협력이 중요하다. 실제로 금융위기 때 각국 중앙은행들이 협력해 금리를 내렸었다. 또 1985년 선진국들은 합의로 달러가치를 떨어트렸고 1987년에는 달러가치를 올리기로 합의했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1일 과거에 중앙은행들이 금리 정책을 조율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 적절하지 않다면서 그는 중앙은행들간 협력이 “정보 공유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국들의 금융정책과 경제상황, 정책결정”을 항상 고려한다고 강조했다.
WB는 중앙은행들간 협력이 가능하지 않다면 각국 정책 담당자들이 “동시다발적 국내 정책이 미치는 여파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많은 중앙은행들이 빠른 물가상승에 금리를 소폭 인상하는 것을 우려한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 이사벨 슈나벨은 지난 달 연설에서 “지금 같은 상황에선 중앙은행들이 강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고 유지하려면 물가를 빠르게 목표치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비엔나국제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 필립 하임버거는 “비공식 조율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데 따른 충격을 체계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국제적 금리인상을 선도하고 있으므로 “다른 나라들의 금리 인상 주기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회사 AXA의 경제학자 기예 모에는 각국의 실질적 협력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할 때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정책이 규제로 바뀐 뒤에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금리조정회의 사이에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의 양이 제한돼 과잉대응의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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