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나타날 가능성 낮아”
#과거 환율 급등기 네 차례
#IMF·리먼브라더스·동유럽 신용위험 등
#역대 최고 원화 하락폭은 1997년 53.4%
#원화 가치 올들어 20.4% 하락
#달러 강세 만큼 원화 가치도 하락
#원화 하락 속도는 2008년 이후 가장 빨라
#CDS 프리미엄·단기채무 비율 아직 양호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미국의 고강도 긴축 경계감과 영국 감세안에 따른 파운드화 약세, 중국 경기 부진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 1430원 수준도 뚫었다. 지난 22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1400원을 넘어선 이후 원화 가치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강달러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되는 등 조만간 1500원 수준도 넘어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때처럼 달러 경색이 나타난 것이 아닌 데다, 국가 신인도 지표 등도 양호한 만큼 ‘제2의 외환위기’가 나타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과거 환율 급등기는 ▲1997~1998년 외환위기 ▲2001년 미국 닷컴버블 붕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네 차례다. 이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던 때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역대 두 차례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아시아 금융위기 전이에 따른 시장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1997년 9월 말 914.4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같은 해 12월 23일 1962.0원으로 53.4%나 급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2008년 9월 파산한 뒤 이에 따른 여파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09년엔 동유럽 국가의 신용위험 등이 가중되며 환율이 급등했다. 2008년 8월말 1089.0원이던 환율은 2009년 3월 2일 1570.3원으로 30.7%나 뛰었다.
닷컴버블 붕괴때는 원화가 엔화 약세에 동조화된 가운데 IT기업을 중심으로 미 주가의 큰 폭 하락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가세하며 2000년 10월 말 1139.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2001년 4월 4일 1365.2원으로 16.6% 급등했다. 코로나19 확산기에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시장 불안심리가 지속되면서 미 달러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2019년말 1156.4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2020년 3월 19일 1285.7원으로 10.1% 올랐다.
반면 최근에는 미 연준의 긴축 강화와 글로벌 달러화 강세로 인해 2020년 12월 말 1086.30원 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9월 26일 기준 1431.3원으로 31.7%나 급등했다. 올 들어서만 20.4% 하락했다. 외환위기 때보다는 원화가치 하락 폭이 작지만, 금융위기 때 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과거에는 달러 강세 대비 원화 약세가 유독 심했지만, 최근엔 달러 강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원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5% 오른 반면 같은 기간 원화 가치는 53.4%나 폭락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달러화가 14.9% 올랐으나 원화는 두 배 가량인 30.7%나 하락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기 때는 달러화 가치가 1.3% 밖에 안 올랐으나 원화는 16.6%나 하락했다. 최근 상승기인 2020년 말 대비 9월 26일 기준 달러화 가치는 26.1% 올랐고, 원화 가치는 높은 31.7% 하락했다.
다만, 환율 상승 속도로만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1400원을 돌파한 이후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원·달러 환율이 1962.0원(1997년 12월 23일)까지 치솟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1570.3원(2009년 3월 2일)까지 올랐다. 1400원에 진입한 후 고점까지 걸린 시간은 1997년엔 14일로 매우 짧았지만, 2008년엔 131일 가량 걸렸다. 최근의 경우 지난 6월 23일 1300원을 돌파한 후 1400원(9월 22일)을 넘는데 까지 91일 걸렸다. 아직 고점은 알 수 없지만, 2008년보다 빠른 속도다.
과거 네 차례의 환율 급등 모두 대외요인의 악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기초 경제여건, 대외 건전성 정도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달랐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내 경제의 구조적 부실에 따른 국가신용등급 하락이 더해지면서 그 여파가 커졌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1997년 11월 A1에서 A3등급으로 낮춘 후, 1997년 12월 투자부적격 등급인 Ba1까지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대외건전성 악화 등으로 취약성이 부각되면서 환율이 큰 폭 상승했고 이 과정에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했다.
닷컴버블 붕괴시기와 코로나19 확산기에는 대외건전성이 개선되면서 환율 상승폭과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430원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과거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수준에 직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과거 위기 수준만큼 높지만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 비율은 낮은편이라는 것이다. 또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우리나라 대내외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에서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과거 두 차례 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실제 대외 외화차입여건을 나타내는 외평채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달 21일 기준 40bp(1bp=0.01%포인트)로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CDS 프리미엄이 650bp까지 폭등했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은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나타나낸 지표로, CDS 프리미엄이 높을 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도 Aa2로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만기 1년 이하인 단기외채 비율은 최근 들어 다소 높아졌지만, 과거 위기 때에 비해서는 낮다. 한은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기준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41.9%로 전분기 말(38.2%) 대비 3.7%포인트 증가했다. 단기외채비율이 40%를 넘은 것은 2012년 3분기(41.5%) 이후 근 10년 만이다. 또 2012년 2분기(45.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채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외채무(총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도 27.8%로 전분기 말(26.7%) 대비 1.0%포인트 늘었다.
반면, 금융위기 당시에는 단기외채 비율이 최고 70%로 높았다. 단기외채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클 때 급격히 빠져나갈 우려가 큰 자금으로 지표가 낮을 수록 안정적으로 평가 받는다. 또 대외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단기외채비율이 높아진 것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환율 방어에 나선 영향이 크다. 여기에 단기외채가 89억 달러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다. 7월 반짝 늘었으나 8월 들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서만 외환보유액이 266억9000만 달러나 줄었다. 원·달러 환율이 8월 초 1304.0원에서 8월 말께 1350.4원까지 한 달 간 50원 가까이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자 외환 당국이 매도에 나서면서 외환보유액도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단기외채비율 상승과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점은 원화 약세를 키울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94억7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이는 5개월 연속 적자 기록으로 지난 2007년 12월~2008년 4월 이후 처음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과거 환율 급등기는 외환보유고 부족이나 대외채무 비율 등이 주요 문제였기 때문에 국가 채무의 안전성 문제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가 핵심 이었다”며 “반면 최근의 경우 과거 환율 급등 사례와 가장 큰 차이점은 CDS프리미엄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대외채무 비율 상승 리스크가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 리스크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영국 감세안 등 유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상승 압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외환보유고가 줄고는 있지만 전세계 9위로 적정 규모를 소폭 상회하고 있어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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