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화 가치 급락해 1985년 이후 최저치 기록
대규모 감세 정책 여파…영란은행 구두개입 나서
5년 만기 국채 금리 이탈리아·그리스 보다 높아져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놓으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자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구두 개입에 나서면서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세계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월스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영국 파운드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이 약 5% 하락하면서 한때 사상 최저 수준인 1.0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마가렛 대처 총리 시절인 1985년 이후 최저치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은 지난 23일 영국 정부가 50년 만에 대규모 감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23일 하루에만 파운드화는 3% 폭락했다.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25일 추가 감세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하자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더 내려갔다.
영국 정부는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으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시장은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만 혜택을 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외환 시장이 요동치면서 BOE는 성명을 통해 금융시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으며 급격한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BOE는 11월에 예정된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논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BOE가 유례없는 긴급회동을 통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이야기도 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계획을 일부 조정하지 않으면 BOE가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1%포인트 인상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알리안츠 수석고문인 모하메드 엘에리안은 “정부가 지출을 늘리려고 하고 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릴 것이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대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폴 데일스 영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오늘 정부와 영국은행의 성명이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한 시장의 두려움을 완화하기에 충분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채무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채권 시장도 혼란을 겪었다. 영국 1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하루 만에 0.5%포인트 상승해 4.12%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또한 트레이트웹에 따르면 영국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4.535%를 기록했다. 이는 4%에 못 미치고 있는 그리스와 이틸리아 국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 수준이 높다는 지적에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국채 금리를 기록해왔다.
대출기관인 핼릭팩스는 일부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폐지했으며, 버진머니는 시장 움직임 때문에 이주 말까지 신규 주택 담보대출 신청을 중단했다.
WP는 칼럼을 통해 “영국이 이탈리아를 대체하면서 새로운 유럽의 경제 문제 국가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파급 효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고위 인사들도 파운드화 폭락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란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보스틱 총재는 영국 감세안으로 인한 파운드화 가치 폭락이 세계 경제를 침체 위험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냐는 질문에 “도움은 안된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대체 경제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그 궤적에 의문을 품도록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연준이 현재 치솟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외부 충격이 더해지면 상황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한 경제적 또는 지정학적 사건이 미국 경제를 긴축시켜면서 경기 침체로 몰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2paper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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