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환율 13년6개월 만에 장중 1440원 돌파
#”달러 강세 못 막는다” 패닉 매수 늘어
#”환율 더 오른다” 기대에 달러 보유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원·달러 환율이 1440원선도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외환당국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외환당국은 달러 매도시장 개입까지 나서는 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강달러 앞에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더이상 달러 강세를 막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져 외환당국의 신뢰도가 무너진 상황에서 어떤 대책을 내 놔도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계적 달러 강세인 상황에서 달러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달러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수출 기업들이 달러를 팔지 않고 갖고 있으려는 심리가 커진 반면, 조금이라도 더 쌀 때 사려는 매수 세력은 더 늘어나면서 수급 불균형이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442.2원까지 오르는 등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영국 파운드화 쇼크로 촉발된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 중국 경기 침체에 따른 위안화 약세 등 동시다발적인 글로벌 악재가 겹치면서 주요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지만, 원화 가치 하락세가 지나치게 가팔라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외환당국은 원화 약세를 막기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하루 새 20원씩 급등하고 있는 환율에 속수무책이다. 당국은 지난주 달러를 거래하는 국내 외국환은행들에 달러 매수·매도 현황과 각 은행의 외환 관련 포지션을 매시간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달러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수출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달러를 쟁여 놓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과 16일에는 7~10억 달러 규모의 달러 매도 시장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외환시장에서 일평균 거래되는 거래대금은 100억 달러 정도 규모니 하루 평균 거래량의 7~10% 가량에 해당한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국민연금과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국민연금이 한국은행에 원화를 제공하는 대신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공급받아 해외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기획재정부도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 수요를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이 소화하는 등 연말까지 80억 달러 가량이 국내 외환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조치키로 했다. 두 방안 모두 하루 평균 외환시장 거래량도 안 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달러 매수 시장 개입 등 온갖 대책을 다 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커지면서 어떤 대책을 내놔도 먹히지 않고 있는 패닉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세계적 달러 강세에 달러를 보유하려는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달러화 추가 강세에 베팅하는 롱심리(달러 매수)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 업체들이 달러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달러 매도를 유보하고 있어 분기 말 네고 물량이 과거보다 적게 출연하고 있다는 점도 달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정희 국민은행 연구원은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달러를 매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불안까지 이어지면서 환율이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 업체들의 매도 물량도 꾸준히 나오고는 있지만 이에 비해 달러가 더 오르기 전에 사들이려는 불안심리에 매수가 더 많이 늘면서 수급 불균형이 이어지고 있다”며 “달러 매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신용이 안 좋은 기업들, 특히 선박사들의 매도가 막혔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국인과 국내기업, 국내 진출한 외국기업 등의 국내 외화예금 동향을 알 수 있는 지난달 거주자외화예금은 줄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추세적 감소 전환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말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은 882억7000만 달러로 전월대비 21억1000만 달러 감소했다. 이 가운데 달러화 예금은 15억7000만 달러 감소한 749억 달러로 집계됐다. 외화예금이 줄기는 했지만 줄어든 금액 대부분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했던 인수합병(M&A) 등 직접투자자금을 회수한 영향이다. 한은은 잔액 증감만 조사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향이 없었다면 15억 가량의 외화예금이 늘어났을 수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역시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은 역외 투기세력이 아닌 국내 수요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28일 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달 환율 급변동은 역외 세력보다는 국내 주체들의 영향이 더 크다”며 “8월에는 역외의 투기적 움직임 때문에 환율이 많이 올랐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흐름을 봐도 우리 외환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국내 주체이지 밖에 있는 주체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수출입 기업이나 개인투자자 등 경제주체들이 달러를 사재기 하면서 시장에 쏠림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과 같이 심리가 중요한 시기에 내국인이 제일 발빠르게 자국 통화 약세에 베팅하는 길이 너무나도 쉽고 무제한으로 열려 있다”며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금을 모아서 나라를 구하자고 나섰던 국민이 이번에는 한국물을 팔고 떠나는 외국인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러 사기에 바쁘다”고 토로했다.
시장에서는 전날 기록한 1440원 부근이 고점이라는 인식이 생길 경우 매도 물량이 대거 출현하고, 롱심리도 진정될 수 있겠지만 아직은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문 연구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유로존 에너지 위기에 따른 유로 경기 부진, 중국 성장률 둔화, 미 금리인상 등에 강세를 보였던 달러화가 최근 영국발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원화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며 “경기 하방 압력이 부각돼 미 연준의 정책이 바뀌는 등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영국 금융위기 등 시스템 위기로 번지면 1500원까지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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