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선임기자]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거대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비효과다.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차이나 미약하고 사소한 행위가 연쇄적이고 점진적으로 조금씩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결국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변화를 초래한다.
살얼음 위를 걷는다는 말이 있다. 얇은 얼음 위를 걷는데 “쩍”하며 균열 소리가 난다. 얼음이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지금 세상이 그렇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살얼음 판 그 자체다.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고 여기저기서 “쩍’소리가 들린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어떤 파급 효과를 낳을 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때 세상을 호령했던 영국이 새 정부의 감세정책에 흔들린다. 세금을 깎아 준다고 하자 정부 빛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시장의 반응으로 파운드 가치가 폭락하는 등 영국과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렸다.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가 어떻게 될 지, 제2의 리만이 될 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가 아니라 독일의 도이치뱅크가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해당 주식에 대한 공매도로 주가가 폭락한다. 부도 가능성을 측정하는 신용부도스왑(Credit Default Swap, CDS)의 프리미엄이 치솟는다.
달러 폭등으로 각국의 달러 표시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196억 달러나 감소했다. 국가부도 위험을 알리는 CDS 프리미엄이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EU의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리수인 10%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올해 말에 정부 공식 발표 기준으로 100%가 넘을 전망이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도 9% 언저리서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물가 상승률도 5%가 넘을 전망이다. 다 마사지 한 숫자들이다. 밥 한끼 사 먹거나 외출 한 번 해보면 안다. 뭔 놈의 물가가 그렇게 올랐는지. 살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최근 며칠간 나온 뉴스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위험한 뉴스는 사실 더 많다. ‘쩍’하고 얼음판 갈라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이 흔들리고 깨져가는 소리다. 그 이유의 상당부분이 시스템의 기반인 달러 유동성의 쓰나미에 따라 발생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미국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 주도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흔히들 말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TD),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등이 다 이 시스템 안에 있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저런 국제 기구들이 있지만, 큰 힘을 쓰지는 못하는 상태다. 정치, 군사, 외교적 동맹관계나 국제기구의 역학관계는 뭐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존하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은 기축통화인 달러에 기반한 이들 기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북극의 빙하처럼 단단했던 이 시스템에 지금 균열이 생기고 있다. 여기저기서 나는 파열음은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인 셈이다.
간밤에 살얼음판에서 “쩌어억”하는 큰 소리가 났다. 얼음의 중심이 깨져 나가는 소리다.
바로 산유국 모임인 OPEC+가 원유생산을 하루 200만 배럴 감산하겠다고 발표한 것.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에 노심초사 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난리가 났다. 그중 미국 중심 경제 시스템의 균열을 스스로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OPEC+가 오늘 발표로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 증산을 요구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었다. 시간이 흐른 뒤 증산은 커녕 감산이란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사우디는 이에 앞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문했을 때 달러로 결제하는 원유 수출대금을 위안화로 받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흘리기도 했다.
사우디와 OPEC이 러시아 편에 섰다는 미국의 지적은 ‘압박”이자 동시에 ‘고백’이다.
‘압박’은 사우디 왕조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고, ‘고백’은 달러 패권의 한 구석이 무너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 달러 중심의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이미 한차례 커다란 위기를 넘긴 바 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등으로 달러를 마구 발행한 뒤 궁지에 몰렸었다. 미국은 그 때까지 달러를 가져오면 금을 내주는 금태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일정량의 금을 보유하고 달러를 발행한 뒤 달러를 가지고 오면 금을 내주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 등은 미국이 준비금이 없이 달러를 발행한 사실을 눈치채고 금태환을 요구했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을 중단했다. 달러는 이제 금에 기반한 기축통화가 아니라 단지 미국 정부의 신뢰와 헤게모니에 기반한 피아트 머니가 된 것이다.
미국은 달러의 위기를 사우디의 협조를 끌어내 극복했다. 양국은 1974년 원유결제대금으로 미 달러만 사용키로 하고, 미국은 사우디 왕정의 안전을 보장하는 거래를 했다. 이후 달러는 금본위 화폐가 아니라 패트로 달러로 불리게 된다.
사우디와 미국이 멀어진 이유는 다양하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국가간 관계이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간단히 정리하자. 그러나 사우디가 러시아 편에 섰다는 미국의 발언은 페트로 달러의 약화를 스스로 자백한 것이다.
당장 대다수 국가의 원유결제대금이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가 쓰이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들려오는 달러 시스템의 균열과 파열음은 외면하기 어렵다.
러시아 시장에서 위안화 거래대금이 달러를 초과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러시아가 암호화폐를 국제결제 수단으로 사용키로 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달러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경제시스템이 균열이 더 악화하면 어떻게 될까? 그에 기반한 경제활동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미국은 글로벌 리더로서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더 힘든 다른 나라의 사정을 돌보는 리더십을 발휘할까? 미국의 국내 사정이 그런 리더십을 허용할까?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중국이 리더십을 잡는다면 세상은 행복할까? 우리 정치권과 정부는 이런 아수라장에서 우리 국민들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필요 없는 질문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세상이 바뀌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더라도 그 과정에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양산된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다.
전쟁이 난 나라 사람들, 은행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있어도 사용하기 힘든 사람들, 물가 상승으로 곤욕을 치르는 나라의 사람들, 경제제재로 금융시스템에 편입 할 수 없는 국가나 개인들은 이미 비트코인을 그들의 생존과 삶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다.
흔들리고 균열이 발생하는 거대한 기존 시스템의 변방에서 비트코인은 힘을 늘려가고 있다. 마치 중앙정부의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변방부터 민란의 기운과 기존 시스템의 전복을 꿈꾸는 세력들이 나타났듯이 그렇게 비트코인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이 프랑스 혁명처럼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바꿀지, 아니면 영국의 명예혁명처럼 타협할 지는 비트코인의 몫이 아니다. 영국의 존왕이 돼서 시민사회와 타협할 지, 프랑스의 루이 16세처럼 단두대의 희생양이 될 지는 지금 권력을 가진 세력이 선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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