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발표 다음날 채안펀드 투입…규모 확대도 추진
#민간에 적극적 역할 요청…대형증권사 제2채안펀드 화답
#증권금융 3조 추가 유동성 공급 착수…여전사 자금조달도 점검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금융당국이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사태와 관련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금융권 부실 전이를 막기 위해 유동성 공급 속도전에 나섰다.
‘돈맥경화’가 대기업들까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의 회사채에 투자함으로써 가장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인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규모 확대까지 시사해 주목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25~26일 이틀간 은행, 증권, 여신전문금융사(여전사) 등 업권별 주요 관계자들을 잇따라 불러모아 시장 점검회의를 가지며 전방위 대응책을 가다듬었다.
이는 그만큼 자금경색 사태가 심각하다는 방증인 동시에 시장 안정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와 실행능력을 보여주려는 시그널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통해 채안펀드 20조원,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한국증권금융의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위기대응 구원투수 채안펀드 등판…규모 확대 ‘만지작’
우선 금융당국은 지난 23일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재가동 계획을 밝힌 바로 다음날부터 즉시 투입에 들어갔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10조원 규모로 조성됐던 채안펀드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20조원을 목표로 다시 조성됐는데 이를 통해 급한불 끄기에 나선 것이다.
채안펀드는 필요시 출자사들에 자금 납입을 요청하는 ‘캐피털콜’ 방식으로 조성된다. 2008년 첫 조성 당시 협약에 따라 산업은행 20%, 은행권 60%, 생명보험 12%, 손해보험 3%, 증권사 5%의 출자구조다.
현재 3조원 가량이 모였고 이 가운데 1조6000억원이 남아 있다. 금융당국은 채안펀드의 여유재원인 1조6000억원을 활용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만기도래 차환 물량에 대해 매입요건 충족시 매입을 추진키로 했는데 지난 24일 하루에만 수백억원 물량을 매입했다.
특히 채안펀드의 규모 자체도 필요시 더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으로 자금경색을 풀어내는 데 부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채안펀드의 추가 캐피탈콜(자금 납입 요청) 규모에 대한 질문에 “총량은 20조로 얘기했는데 얼마씩 할지는 아직 모른다”며 “20조원 갖고 안 되면 더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추가 캐피탈콜을 다음달 초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인데 이를 통해 20조원까지 채우고도 필요시에는 그 이상으로 채안펀드 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갖고 있는 자금만으로는 해결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가 채안기금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민간 쪽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민간에서 여유가 있는 곳과 논의할 것”이라고도 했다.
규모 확대를 시시사한 채안펀드와는 별개로 민간에서도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기금 조성을 요청한 셈인데 이는 즉시 대형 증권사들의 ‘제2의 채안펀드’ 조성 논의로 구체화됐다.
금융투자협회장 주재로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사장단이 회사별로 500억∼1500억원씩을 출자해 최대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중소형 증권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을 매입해주자는 구상을 논의한 것이다.
민간 자율로 증권업계 자구책을 내놓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김 위원장이 민간의 역할을 강조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여기에는 중소형 증권사들에 대한 유동성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 PF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증권사들은 부동산 경기침체에 자금경색 사태까지 겹치면서 차환 발행에 실패하고 있다.
그간 증권사들은 부동산 시행사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나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을 발행해 신용보강을 하고 이에 대한 이자 수익이나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이같은 PF유동화증권이 팔리지 않는다면 신용보강을 했던 증권사들이 직접 매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가 신용보강한 PF유동화증권 가운데 당장 이달말까지 6조7013억원이 차환발행돼야 하며 11월 10조7297억원, 12월 9조7574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위기 도래 증권업계에 증권금융 3조, 산은 CP매입 2조도 즉각 투입
금융위와 금감원은 전날 한국증권금융 및 15명의 주요 증권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과 증권업계·단기자금시장 유동성 강화 점검회의를 갖고 유동성 공급 대책의 일부였던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증권사들에 대한 3조원의 추가 유동성 공급도 시작했다.
자금경색 사태로 단기 자금시장을 통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증권사와의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증권담보대출 등의 방식으로 전날부터 자금 공급에 착수한 것이다.
특히 RP거래시 기존 국공채와 통안채, 은행채 외에 AA이상 회사채를, 증권담보대출시에는 기존 RP 대상채권과 상장주식 외에 AA이상 회사채, A1 이상 CP, 예금형 ABCP, 증금채 등을 담보 제공대상 증권으로 허용해 중소형 증권사들에 폭넓은 지원을 한다.
현재 25조원 내외로 공급 중인 기존 RP와 증권담보대출, 일일 할인어음 매입도 지속적으로 공급해 금융투자사들의 단기자금 확보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지난 23일 발표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회사채·CP 추가 매입 프로그램도 이날부터 가동된다. 기존 5조5000억원을 10조원으로 확대한 것인데 이 가운데 우선 2조원을 산업은행이 증권사 CP 매입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초 이 프로그램은 금융사를 제외한 일반 기업만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자금경색 사태를 고려해 이번에만 금융사가 발행한 CP까지 포함키로 한 만큼 자구노력을 확약한 증권사들에 대해서만 CP 매입 자금이 투입된다.
◆증권사 다음은 여전사 차례?…은행에는 은행채 발행 자제 유도
금융당국은 신용카드사, 캐피탈사 등 여전사들에 대한 자금조달 현황 긴급 점검에도 나섰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25일 여신금융협회와 여전사 등을 불러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과 CP 등 업계의 자금조달 현황을 공유했다.
여전사들도 부동산 호황기에 PF 비중을 늘리면서 부실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카드사들의 경우 부동산 PF 취급이 많지 않지만 특정 회사 쏠림이 있고 캐피탈사는 지난 2018년 7조8890억원이던 PF 대출잔액이 올해 상반기 24조8132억원에 달할 정도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특히 여전사들은 수신(예금) 기능이 없고 여신(대출) 기능만 있어서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경색 사태의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증권사에 이어 여전채 등의 집중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에 비해 이번 자금경색 사태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는 은행권에 대해서는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역할과 은행채 발행 자제를 유도했다.
전날 금융위와 금감원이 5개 주요 은행 부행장들과 함께 개최한 제2차 은행권 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서 은행들은 CP, ABCP, 전자단기사채 매입 등을 추진하고 RP매수, 머니마켓펀드(MMF) 운용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채안펀드 조성을 위한 캐피탈콜에 신속히 응하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당초 은행 통합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계획상 올해 말까지 92.5%를 맞춰야 해 대량의 은행채를 발행했지만 이를 6개월 늦춰주기로 한 만큼 은행채 찍어내기를 멈춰 채권시장 안정에 일조키로 한 셈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전방위 속도전에 나선 것은 이번 자금경색 사태를 놓고 정부의 수수방관이 일을 키웠다는 책임론이 번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강원도의 레고랜드 PF 관련 ABCP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이 채권시장에 불씨가 된 것은 맞지만 대규모 적자에 직면한 한국전력이 찍어낸 고금리 한전채와 은행들이 LCR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발행한 은행채가 채권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흡수해 간 게 수개월 전이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정치권의 늑장대응 비판에 연신 고개를 숙였던 김 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런 사안이면 예상하는 스케줄이 있는데 그것보다도 조금 시장 불안이 빨리 심각해졌다”며 “저희가 이것을 놓쳤다는 비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인정한다”고 재차 사과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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