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6조원 규모 RP 매입해 유동성 공급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배치 지적도
한은 “추가 유동성 아냐…공개시장운영 통해 다시 회수”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한국은행이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 우려가 커지자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실시해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채권 시장은 가장 즉각적인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 이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고 있는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돼 ‘엇박자’ 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6개 증권사, 한국증권 금융 등 한국은행 RP 매매 대상기관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3개월 간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기간에 따라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한은이 공개시장 운영으로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0.12. photo@newsis.com |
한은은 단기물 RP를 매입해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할 획이다. 최근 악화된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원활한 자금 순환을 도모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축을 완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은은 내년 1월 31일까지 총 6조 원 규모 수준의 RP매입을 실시할 예정이다. 매입 만기는 91일물 이내로 주로 14일물 등 단기물을 활용하고,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유동성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한은은 RP매입은 최근의 단기금융시장 불안 심화 현상이 연말 연초 단기자금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대비 차원이 큰 만큼 우선 내년 1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할 계획이지만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실시 기한 연장 여부는 필요시 추후 검토할 계획이다. 금리 결정 방식은 복수금리 경쟁입찰이다. 입찰 최저 금리는 준거금리에 10~20bp(1bp=0.01%포인트)를 더한 수준으로 결정한다.
지난 2020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겪자 한은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하 응찰액 전액을 지원해 주는 무제한 RP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한 바 있다. 무제한 유동성 유동성 공급조치로 한국판 양적완화로 볼 수 있는 조치였다.
당시 고정금리 모집 입찰로 응찰금액 전액을 낙찰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RP매입은 복수금리 경쟁입찰(최저금리 이상)로 예정된 금액 이내로 낙찰하는 방식이라 차이는 있다.
이와 관련,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RP매입은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조치인 만큼 금리인상을 지속하고 있는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은 금리인상으로 긴축으로 가고 있는데 RP 매입,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등의 조치는 시장에 통화량이 늘어나는 조치니 엇박자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경색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 긴축 정책의 정도를, 금리인상 폭을 점진적으로 해 베이비 스텝을 밟아야 금융시장 불안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 시장 불안 원인이 고금리도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도 있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를 연착륙 시키기 위해 저금리 시대 때 썼던 규제를 고금리 시대에 맞게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은 5~6%대 고물가가 내년 초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자금경색 우려로 ‘빅스텝’ 보다는 ‘베이비 스텝’ 가능성이 나오고 있지만, 다음달 미 연방준비제도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 놓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통화정책 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전망에 따르면 내년 1분기 정도까지는 5%를 상회하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원인이 수요측이든, 공급측이든 경기에 대해 어느정도 희생을 하든 관계없이 5%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우리나라에 더 나쁜 영향을 중 수 있기 때문에 물가 오름세를 꺾기 위해 물가 중심으로 경제 정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은이 RP를 매입하게 되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 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한은은 RP매입은 금융안정 차원의 시장안정화 조치로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다시 흡수하기 때문에 추가 유동성 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RP 매입을 통해 시장에 자금이 풀리면 금리가 하락하게 되고 추후 이를 적정금리로 맞추면서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등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다시 유동성을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RP매입으로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원활한 자금 순환을 도모하기 위해 일시적 유동성 위축 완화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이번 조치는 유동성의 추가 공급이라기 보다는 유동성 조절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은은 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해 온 이창용 총재의 발언과도 상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금융안정대출이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을 추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지금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데다 한국과 미국간 금리 격차 이슈가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자체는 필요한 것이고, 상황에 따라 시중에 유동성 공급하는 정책도 가능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은 전체적인 유동성을 제어하는 문제지만, RP 매입은 기본적으로 개별 유동성을 공급해 신용을 보강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엇박자라기 보다는 가능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며 “반대로 이를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시장이 더 악화될 수 있고, 시장도 완전히 안정화 된 것은 아닌 만큼 추가적으로 필요하면 또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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