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선임기자] 10월 31일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한 날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발표된 비트코인 백서는 14번째 생일이 지났다. 트위터에서는 수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축하 메시지를 날렸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의 정문에 내건 날이다. 1517년 10월 31일. 비트코인 백서가 발표되기 491년 전 종교개혁의 불씨를 던진 날이다.
두 날이 겹치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다.
종교개혁은 뭐든지 돈이면 된다는 카톨릭에 반발해 일어났다.
교황청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행위가 교리에 어긋난다고 루터는 비판했다. 면죄부 판매를 하면서 했던 설교 내용을 들어보자. “돈 궤에 쨍그렁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연옥에서 고통 받던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는 웅변도 있다(나무 위키).
당시 로마교황청은 최고의 권력이었다. 유럽의 황제와 왕들은 교황의 축복을 받아야 취임하고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카톨릭이 권력이고 국가 이상이었다. 왕권신수설. 권력이 신으로부터 나왔다.
비트코인은 뭐든지 돈을 찍어 해결하면 된다는 국가(중앙은행)에 반발해 만들어 졌다. 비트코인 백서는 금융위기의 한 복판에서 발표됐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은 돈을 찍어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으로 불렸다. 헬리콥터로 마구 돈을 뿌리겠다고 공언했다. 실행했다.
종교개혁은 돈에 집착한 권력에 대한 반발이었고, 비트코인의 탄생도 돈의 힘에 의지하는 중앙권력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
이득은 누가 취하고 피해는 누가 보는가.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기득권 자이고,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이다. 중세 사람들을 중산층 서민으로 표한하는게 무리라면 힘없고 빽 없는 민초라고 부르자.
민초들은 돈을 가져다 바치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면죄부는 우스꽝스럽다. ‘돈을 내면 천국에 가고 아니면 지옥에 간다’는 설명을 납득할 사람은 지금은 많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는 달랐다. 그만큼 카톨릭의 힘은 강했다.
지금도 민초들은 돈을 가져다 바치기에 여념이 없다. 세련된 방식으로 권력은 돈을 가져간다. 하나가 세금이고, 다른 하나가 인플레이션이다. 물가 상승은 급여생활자와 연금생활자에게는 세금과 다름 없다. 물가가 오른 만큼 물건을 덜 사야 한다. 가만히 않아서 내 돈이 줄어든다.
누가 내 돈을 슬그머니 강탈해 가는가. 물가가 오르면 누가 돈을 버는가. 당연히 빚을 많이 진 나라다. 나라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고 채권을 발행해 돈을 가져다 쓰는 최대 채무자이다.
이제 드러났다. 중세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 발행권을 가지고 민초의 돈을 가져갔다면, 현대 정부는 돈을 찍을 권리를 가지고(법정화폐 피아트 머니) 인플레이션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금으로 민초들의 돈을 가지고 간다.
사토시가 10월 31일에 비트코인 백서를 발표한 이유다. ‘중앙 신뢰기구’ 없이 개인들 간에 거래하는 P2P 화폐 비트코인의 생일은 그렇게 정해졌다.
종교개혁은 신과 국가를 분리했다. 신권 국가는 이후 시민혁명을 거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공화국으로 발전한다.
비트코인은 국가와 돈을 분리했다. 지금 우리 눈에는 신권국가는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정부가 법으로 돈을 찍어 내는 세상도 지나간 역사일 수 있다. ‘사토시와 그 일당들’이 꿈꾼 세상이다.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최대로 보장되는 디지털 골드의 세상.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기존 체제를 뒤집는 혁명으로 본 것이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백서를 발간한 뒤 2009년 1월 3일 첫 블록(제네시스 블록)을 만들었다. 50개의 비트코인이 채굴됐다.
1월 3일은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창시자 마르틴 루터와 연결된다. 로마 교황청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 마르틴 루터는 1521년 1월 3일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로마교황청과 마르틴 루터는 완전히 결별했다. 10월 31일이 우연이 아니듯이, 1월 3일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토시는 홀연히 사라졌다.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금융계좌가 동결된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를 지원하고 비트코인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 비트코인을 송금하자 자취를 감췄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 눈에 보이는 선봉에 서서 싸웠다면 사토시는 조용한 싸움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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